[손수호 칼럼] 카이스트의 미래 기사의 사진

“혁신 지속하되 방향 수정이 필요한 때… 융합의 본산 되려면 사회적 신뢰 쌓아야 한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는 한국과학의 등불이다. 해외 석학들로 이루어진 막강 교수진, 국제적 수준을 자랑하는 수업, 엘리트 학생들의 강한 자부심이 뒤섞여 오늘의 카이스트를 만들어 냈다. 연구실적이나 학습환경에서 국내 정상급이며, 세계 대학순위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꿈의 노벨상이 여기서 나올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런 카이스트가 올해 정원을 채우지 못해 놀라움을 던져 주었다. 이례적으로 추가모집까지 나섰지만 84% 등록에 그쳤다고 한다. 이유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있다. 더러는 서남표 총장의 개혁 후유증으로 돌린다. 미국식 교육행정의 섣부른 이식이 무리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쪽에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공계 기피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과학공부하라고 카이스트에 보냈더니 엉뚱하게 의사나 법조인으로 진로를 튼 학생이 10%를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게 전부일까.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없을까. 지금 카이스트에 가보면 캠퍼스가 겨울방학의 정적 속에 파묻힌 것이 아니라 견학 온 아이들로 북적거린다. 꿈의 학교를 돌아보며 꿈을 키우는 행렬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기껏 건물 앞에서 사진 찍고, 식당에서 밥 먹는 게 고작이다. “카이스트 다녀온 뒤 우주가 재미있어졌다”는 식으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도 “카이스트 구경하고 왔다” 수준에 머물고 있다.

카이스트는 그동안 기부금을 받아 건물을 많이 지었다. 류근철 스포츠 콤플렉스를 비롯해 정문술 빌딩, 박병준홍정희KI 빌딩 등 첨단건물이 잇달아 들어섰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변변한 전시관이나 과학박물관 하나 없다. 유명 건축가의 작품은 고사하고 감동을 던지는 조형물도 만날 수 없다. 카이스트가 열심히 혁신을 향해 달음질쳤으면서도 방향설정을 잘못해 이미지 메이킹에 실패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가 선망하는 미국 MIT는 그렇지 않다. 자랑스러운 박물관이나 수준급의 미술관은 물론 미디어아트연구센터를 만들어 대외 커뮤니케이션에 활발히 나서는 한편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과학의 생활화에 앞장서고 있다. MIT 과학자들은 보스턴을 대표하는 과학축제에 직접 참가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우리 연구자들이 밖으로 나오기는커녕 방에 칸막이를 친 채 움츠리고 있으니 사회적 신뢰감을 얻지 못한다.

이 같은 현상은 과학고등학교 교과과정에도 영향을 미쳐 학생들의 지력을 떨어뜨린다. 한 예로 과학고 출신이 대부분인 카이스트 신입생들에게 책 리뷰 과제를 주면 제대로 수행하는 학생이 드물다고 한다.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하라고 하면 기껏 “좋은 책인 것 같아요” “재미있었어요”라고 대답한다. 한마디로 주제를 파악할 힘이 없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이 아무리 공부하고 연구한들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겠는가.

책을 읽을 줄 모르니 예술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과학자들에게 강력한 영감을 주는 것이 예술이다. 과학자들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아이디어를 작가들이 뿜어낸다. 황당무계한 드로잉, 파격의 선율, 문학의 표현 하나가 상상력의 날개를 잡고 뒤흔드는 것이다. 지난 10월부터 석 달간 이 학교에서 열린 ‘하늘을 보다’ 기획전도 과학자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전시가 끝없이 이어지고 과학자들은 작품 앞에서 넋을 잃고 주저앉을 정도가 돼야 진정한 융합이 가능해진다.

카이스트가 다음 달에 새 총장을 맞는다. 어떤 분이 맡을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혁신을 지속하되 세상을 향해 가슴을 크게 열기를 기대한다. 신입생 미달사태는 올 한 해로 끝내야 한다. 박근혜 정부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앞세워 부처 이름까지 미래창조과학부로 정했다. 카이스트 교가에 나오는 ‘번영하는 미래의 선구자, 창의력으로 전진하는 인류의 횃불’이 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카이스트는 여전히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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