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31) 바보예수 기사의 사진

바보예수 (한완상, 심인)

내가 아는 저자 한완상 박사는 참으로 다정다감하고 온후한 인품의 소유자이다. 옥고를 치르고 해직을 체험하는 등 모진 세월 속을 걸어왔지만 인품은 결코 신산해지지 않아 외유내강의 표본처럼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얼굴은 동안인데 글로 대면하면 외양과는 달리 서슬이 퍼렇다.

나는 저자와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같은 캠퍼스에 근무했고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점도 있지만 바로 이 책 ‘바보 예수’를 놓고도 그렇다. 공교롭게 내가 오래전 저자의 책 제목과 같은 미술전람회를 열어 ‘신성모독’이라며 상당한 비난의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나를 옹호해 주었다. 이듬해 사고로 대학병원에 입원하자 그럴 줄 알았다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하루가 멀다고 병원에 찾아와 기도하고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내게는 늘 맏형 같은 든든한 분이었다. 그랬던 저자가 이번에는 내가 그린 것과 같은 제목을 글로 묶어내었으니 감회가 묘하다. 우리 두 사람은 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보’로 공유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 둘뿐이겠는가. 예수의 생애를 육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참으로 바보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표현만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 누구라도 그분의 희생과 사랑에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2000년 전 바람 부는 유대의 광야 속을 홀로 걸어가신 예수라는 거울로 1980년대의 한국이라는 광야를 걸어온 자신의 삶을 비춰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예수는 당대 현실과 불화하였다. 로마 권력은 물론 동족인 종교지도자들과도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다. 치렁치렁한 금빛 옷자락 속에 부패된 권력과 부를 숨기고 권위를 부려온 종교지도자들로서는 그리스도를 자처하며 자신의 위선과 허위를 지적하는 시골 목수가 눈엣가시와 같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현실에 대해 발언하기를 멈추지 않아 그분을 향한 증오와 분노는 증폭되어 가기만 했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십자가를 정점으로 한 하나님의 예정에 속한 것이겠지만 인간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당대의 권력들과 한점의 타협도 하지 않은 걸음걸음이야말로 위태롭고 조마조마했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80년대를 살며 저자 역시 독재세력에 거칠게 항거하다가 대학에서 쫓겨나고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물론 훗날 상응할 보상과 영예가 주어졌지만 어쨌거나 ‘바보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들다가 부서져 갔다는 점에서 예수의 제자다웠다.

이 책은 그런 개인사적 아픔을 그리스도라는 공적 논리로 비춰보고 있다. 동시에 예수의 바보정신을 거울로 한국 사회와 현실과 교회를 비춰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2000년 전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향했던 예수의 분노가 오늘 그대로 한국 사회와 교회로 향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저자는 교회의 십자가가 암몬의 부적같이 전락한 현실에 개탄한다. 그분의 참뜻과는 너무도 멀리 와서 물량주의의 늪에 빠진 교회에 대해 우수의 목소리를 거두지 않는다. 굶주린 북한 동포와 이웃에 대해 냉담한 채 부를 움켜쥐고 조금도 나누어 주려 하지 않는 세력에 대해서도 예수의 진노가 있을 것이라고 일갈한다.

그는 특히 십자가의 고통 없는 종교 장사로 전락하고 있는 한국의 대형 교회들을 질타하는 데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로 하여금 자신을 신흥 종교의 교주처럼 받들게 한 적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일찍부터 현실에 대해 꼬장꼬장한 대학선생이었던 저자는 이처럼 한국교회와 냉전적 기득권 세력에 대해서도 시종 고운 눈길을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는 특히 책의 도처에서 한국의 교회가 예수의 바보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분의 바보정신만이 한국교회를 질곡에서 건져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나로선 너무 오랜 세월 정치적 세력 속에 있어 적조했던 저자가 이 저서를 기점으로 다시 옛날의 카랑하고 꼬장꼬장한 선생시절로 돌아온 듯싶어 반가웠다. 저자는 두 정권에서 부총리를 두 번씩이나 했지만 역시 체제 순응적일 때보다는 시대와 불화하며 예언적 목청을 가다듬을 때가 더욱 그답다는 생각인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민족시인 윤동주의 ‘십자가’라는 시를 들어 한국 사회와 교회를 향해 다하지 못한 함의를 담고 있다. 어쩌면 이 시 위에 자신의 육성을 얹어놓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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