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문화재청 이정연 사무관 “국보 1호의 재탄생… 잿더미서 희망 쌓아 올렸죠 ” 기사의 사진

5년간 숭례문 복구현장 지킨 문화재청 이정연 사무관

국보 1호 숭례문 복구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2008년 2월 10일에 소실됐으니 꼬박 5년이 걸렸다. 여기에 250억원이 들었다. 전화위복이라던가. 새 숭례문은 과거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일제 때 허물어버린 좌우 성벽의 도심 구간을 복원했고, 판문(板門·널빤지로 만든 문)의 태극이 뚜렷하고 단청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화마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부재(部材)의 대부분을 재활용했다.

원래 일정은 지난해 말 공사를 끝낸다는 계획이었으나 불규칙한 날씨로 4월 말이나 5월 초에 준공식을 갖기로 했다. 수많은 장인들과 문화재 담당 공무원들이 이곳에서 땀을 흘렸다. 이 가운데 소실부터 복원까지 5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장관이 가거나 청장이 오거나 숭례문에 바짝 붙어 공사현장을 지킨 공무원이 있다. 문화재청 수리기술과 이정연(50) 사무관. 차가운 컨테이너에서 생활한 끝에 마침내 준공을 눈앞에 둔 그를 공사현장에서 만났다.

만난 사람=손수호 논설위원

-5년 전 그날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연휴 마지막 날이어서 문화재청이 있는 대전 집에서 TV로 화재 소식을 접했다. 소방관들의 진압과정을 초조하게 지켜보다가 결국 문이 내려앉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쓰렸다. 현실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공무원이다 보니 책임소재 등 문화재청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공사는 어느 단계에 와있나.

“전체 공정이 95% 정도 진행된 상태다. 기와, 단청안료 등 전통재료를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또 옛날 방식으로 작업하다 보니 다소 늦어졌다. 이달 20일쯤 가설한 덧집이 해체되면 숭례문의 외관을 온전하게 볼 수 있다. 한양 도성의 정문이라는 지위에 걸맞게 웅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직책이 어떻게 바뀌었나.

“숭례문의 소관을 따지면 건축문화재과다. 나는 당시 궁과 능을 담당하던 궁능문화재과 사무관으로 근무하였으나 화재 3일 후부터 현장에 파견돼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문화재청에서 숭례문복구단을 만들고 단장은 국장급이, 부단장은 과장급이 맡고 그 아래 복구공사팀, 고증조사팀, 행정지원팀 등 3개 팀을 만들어 2년 정도 운용했다. 현재는 여러 부서에서 파견된 5명의 직원이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 사무관은 그동안 문화재청장이 유홍준 청장에서 이건무 최광식 김찬 등 3번 바뀌는 동안에도 동일한 직무를 계속 맡아 숭례문 복구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처음 발령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능력에 비해 큰일을 맡아 어깨가 무거웠다. 그러나 국민의 상실감을 치유하면서 600년 자존심을 다시 세우는 일이 뜻 깊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2005년도에 숭례문을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밀 실측했고 1963년에 발간된 ‘남대문 수리보고서’가 있어 기술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문화재청에서도 현장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국민들의 관심이 지대했는데.

“화재 1년이 지나면서 문화재청에서 그동안에 난 기사를 스크랩해 ‘언론에 비친 숭례문 화재 1년’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1000쪽이 넘는 지면을 보니 관리시스템과 소방시설 부재, 무너진 자존심 등에 관한 내용으로 꽉 찼더라. 숭례문 가림막에 국민들이 써놓은 글도 질타, 참담, 허탈, 분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모든 걸 겸허히 받아들이고 재건에 필요한 탕약이라 여기고 삼켰다.”

-현장 근무하면서 애환은.

“화재 수습을 위해 문화재청 직영보수단이 5월까지 투입됐다. 이때 나도 문루 2층에 올라갔다. 붕괴된 잔해를 손으로 거두면서 시꺼먼 잿더미를 마주한 순간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흙과 기와조각을 포대에 담아 내리고 하는 작업을 안전장치를 미처 갖추지 못한 채 진행했다. 그렇게 긁어모은 게 3만 포대나 된다. 이후 눈비가 오면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작업을 중단하고 40여명이 달려들어 포장을 씌웠다 걷었다 했다. 눈 오는 밤이면 포장이 찢어질까봐 밤새 눈을 털어냈다. 공휴일 없이 상시근무체제로 유지됐기에 직원들 모두 휴일이나 명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현장근무를 마치고 서울에서 기차를 타면 바로 잠이 들어 대전에서 내리지 못한 적도 많다.”

-복구된 숭례문이 우리 시대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

“정상급 기술자들이 전통기법을 사용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1963년 수리공사에 참여했던 원로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이 세세한 부분까지 검토해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 회의가 23차례나 열렸다. 일제 때 헐린 성벽과 여장(女墻·성 위에 낮게 덧쌓은 담)을 복원하기 위해 포천 화강석을 다듬고 쌓는 데 최고의 석공이 참여했다. 이 정도면 당대의 건축 아니겠나.”

-국보 1호의 가치는 여전하다고 보나.

“숭례문 전부가 불타고 무너진 것으로 아는 분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1층은 거의 온전했고, 돌로 된 성문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화재 이후 문화재위원회의 사적·건축 합동분과에서 국보 1호 유지를 결정한 것도 이런 점이 판단의 재료로 쓰였다. 국보로 지정할 당시에도 목조 건축만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 등 복합적 요소를 감안해서 결정한 것이기에 그런 부분을 존중한 결과라고 들었다.”

-예전 숭례문과 달라진 부분은.

“와서 보면 알겠지만 전통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자연스럽고 고풍스러운 맛을 더했다. 한마디로 건축미가 그윽하다. 발굴조사와 문헌고증을 통해 지반 높이를 30㎝ 정도 들어 올려 더욱 우뚝해졌다.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잘못 복원된 숭례문 현판 역시 양녕대군 사당인 지덕사 현판 탁본자료를 찾아 복원했다. 또한 옛날 사진과 1963년 도면자료에 따라 용마루 길이와 높이를 키웠더니 건물의 웅장함이 더하다.”

-숭례문 방호는 어떻게 바뀌나.

“이전까지 숭례문 관리는 서울 중구청에서 담당했다. 1968년 서울시를 관리단체로 지정했으나 1995년부터 자치구로 바뀌었으니 관리주체가 격하된 것이다. 화재 후 숭례문에 대한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과 국보 1호로서의 상징성을 고려해 앞으로는 문화재청에서 직접 맡기로 했다. 문화재청 직원이 상주하면서 관리할 것이다.”

-준공 행사가 기대된다.

“어느 좋은 봄날을 잡아 성대한 진치를 펼칠 것이다. 국보 1호의 재탄생을 기념하는 행사인 만큼 국민적 축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숭례문 화재로 입은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의미가 담길 것으로 본다.”

-5년 동안 역사적인 현장에서 일한 소회는.

“숭례문 복구에 정말 많은 국민이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셨다. 특히 몇 대를 길러온 소나무를 아낌없이 기증해주신 분, 숭례문 공개관람을 위해 자원봉사해준 신한은행 직원들, ‘한국의 재발견’ ‘서울KYC 도성길라잡이’ 등 해설을 맡아주신 여러분들이 고맙다.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복구가 어려우므로 내 고장 문화재부터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주 찾는 것이 나라사랑의 지름길이 아닌가 한다. 문화재청에서도 해체·수리보고서와 5년의 영상기록을 남겨 길이길이 교훈으로 삼을 것이다.”

■이정연 사무관은

충북대 건축과와 충남대 대학원 건축과를 나와 1993년 국방부 건축직으로 공무원 생활을 한 이후 1999년 문화재청으로 전입했다. 그동안 남원 광한루, 전주 객사, 법주사 대웅전 등 수많은 문화재 수리에 참여했다.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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