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한승주] 한국의 영화상이 나아갈 길 기사의 사진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이다. 해마다 2월이면 미국 할리우드뿐 아니라 한국 극장가도 들썩인다. 아카데미 몇 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이라는 홍보물이 거리에 나붙는다. 작품상이나 감독상 후보작이라고 하면 신뢰가 생긴다. 여우주연상이나 남우주연상 후보면 배우의 연기력을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아카데미는 후보에만 올라도 영광이다.

시상식은 그야말로 축제분위기다. 보통 현지시간 2월 넷째 주 일요일 저녁에 진행된다. 전날부터 시상식이 열리는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돌비 시어터(옛 코닥극장) 일대는 교통이 통제된다. 당일 아침부터 배우와 감독을 보려는 영화팬들이 줄을 서고 오후 4시부터 방송사의 생중계가 시작된다. 수상 결과는 물론 레드카펫을 밟은 배우들의 화려한 드레스와 빛나는 보석, 시상식 이후에 진행되는 파티까지 모든 것이 관심거리다. 그래서일까. 각 부문 후보 5명은 불가피한 경우를 빼곤 대부분 시상식에 참여한다. 수상 여부에 상관없이 시상식 참여 자체가 기쁨이다.

그런데 한국의 영화상은? 우리에게도 여러 상이 있지만 뭐 하나 손에 꼽을 대표상이 없다. 일단 후보에 오른 영화인이 모두 참석하는 영화상이 없다. 상에 권위가 없으니 수상자도 아닌데 굳이 참석할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이다. 심지어 수상자로 통보받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나오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한국 영화상의 대표선수인 대종상을 보자. 1962년 정부 주도로 출범한 대종상은 1992년 한국영화인협회로 주최가 넘어왔다. 나눠먹기, 금품수수 의혹 등 각종 비리로 얼룩졌다. 이후 2007년 대종상영화축제, 2012년 대종상영화제로 주관 단체가 바뀌었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수차례 개혁이 있었지만 심사 과정의 투명성, 심사 기준의 공정성 등에 다양한 문제를 노출해 왔다. 심사 과정을 개혁한 지난해도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5개 부문을 독식하면서 대종상이 아니라 ‘대충상’ 또는 ‘광해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개최 시기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 해 동안 열리는 영화상 가운데 대종상을 포함해 무려 6개가 10월과 11월에 열린다. 상반기에는 2∼3개에 불과하다. 한 해를 결산하는 의미의 영화상이라면 개최 시기를 흥행 성적이 마감된 후인 1∼2월로 옮기자는 방안도 설득력 있다. 전년도 영화계를 평가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일본 프랑스 영국의 대표적인 영화상이 2월에 개최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모범적으로 평가받는 아카데미상은 어떻게 운영될까. 1929년 시작된 아카데미상은 영화산업 전문가 6000명으로 구성된 AMPAS(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영화제를 운영해 신뢰를 높인다.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선정하는 영화인에 의한, 영화인을 위한 상인 셈이다. 그렇다고 비평가들의 의견이 무시되지도 않는다. 정부의 간섭도 없고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아카데미상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AMPAS 회원의 연령이 높은 편이고 대부분 백인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 할리우드 대형 제작사의 로비 공세에 노출돼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하지만 시상식이 매년 100여개 이상의 나라로 생중계될 만큼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것은 그만큼 권위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영화의 성장이 눈부시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영화가 두 편이나 나오고, 한국영화 관객이 1억명을 돌파했다. 이제 한국에도 후보에만 올라도 가문의 영광인 영화상 하나 정도는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한승주 문화생활부 차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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