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32) 모든 것이 은혜다 기사의 사진

모든 것이 은혜다 (브레넌 매닝, 양혜원 옮김, 복 있는 사람)

“내 소식을 한동안 듣지 못했을 겁니다. … 지난 몇 년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힘들었습니다. 사실 내 계획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뿌리가 뽑혀 익숙하면서도 낯선 땅에 이식되었습니다. 이 말은 문자적이기도 하고 비유적이기도 합니다.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었습니다.”

저자는 한때 가톨릭 사제였다. 그리고 지금은 명저술가이고 설교가이며 강사이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이다. 중독도 지독한 중독이다. 수십년간 지속된 만성적이면서도 중증의 알코올 중독자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는지를 가리지 않고 다 드러낸다. 그렇다. 좀 저속한 표현이지만 그는 바닥까지 내려간 자기의 삶을 그야말로 까발리듯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책이 부랑아의 회고록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부랑아에게는 하나의 기도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는 흐느낌의 기도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반평생 넘어지기를 계속하고 있을 뿐 온전한 회복과 온전한 치료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수도 없는 은혜 간증을 한다. 그리고 처음엔 의아하거나 심지어 불쾌한 기분으로 이 ‘부랑아 복음집회’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고 감격하고 눈물을 흘린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 불행한 자의 위로는 그보다 더 불행한 자의 위로가 있을 때 참 위로를 받는다는 말을 새겨봄직하다. 그래도 그렇지 알코올 중독자의 간증에 위로를 받다니, 하지는 말자.

브레넌의 간증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것 자체가 교회와 세속을 흰옷과 검은 옷처럼 구분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 주일이면 거룩한 척 아무 문제 없는 척 안부인사를 나누는 곳이 아니다. 깨어지고 아픈 상처를 서로 내보이고 서로 위해서 기도하고 싸매어주어야 하는 곳이다. 어쩌면 자신의 추한 삶을 드러내지를 마다하지 않은 저자의 생각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과 용서하심과 사랑하심과 자비하심을 증명한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런 반어적 간증에 은혜를 받는 것도 “이렇게 해서 이겼다”는 간증은 무수히 들었지만 “이렇게 했는데도 또 졌다. 그리고 또 지고 또 넘어졌는데도 내 아버지는 그 손을 일으켜 나를 잡아주시고 품에 안아주셨다”는 고백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고백과 간증을 들으며 새삼 덮어두었던 자신의 실수와 언약과 죄악이 생각났을 터이고 저자와 마찬가지로 자신들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아주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감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백발노인이 되어 저자 브레넌은 자신의 생애를 회고한다. 그는 이 회고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 그리고 은혜의 확실성을 드러낸다. 즉 내가 얼마나 나쁜지가 아니라 그 분이 얼마나 선하신지를 증언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딱히 이룬 것도 한 일도 없이 슬그머니 일생을 헌신한 사람들의 대오에 끼어들어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에 합류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 술 냄새를 풍기며 품삯을 기다리며 종일 일한 일꾼들 사이에 끼어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이 모든 뻔뻔한 행각이 가능했던 것도 자신이 경험적으로 아버지의 은혜를 알고 있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인생은 천박한 은혜에 대한 증언이다. 불쾌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은혜다. 하루 종일 아주 열심히 일한 사람이나 5시 10분 전에 술에 취해 씩 웃으며 나타나는 사람에게 같은 임금을 주는 은혜다. 긴 옷을 치켜들고 죄의 악취가 풍기는 탕자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서 그를 새 옷으로 감싸고 ‘만약에, 그래도, 하지만’ 이런 것 없이 무조건 잔치를 열기로 하는 은혜다. 죽어 가는 강도가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청하는 말에 충혈된 눈을 치켜뜨고 ‘당연하지!’ 라고 확신시켜 주는 은혜다. 그분은 하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당신과 나를 위해서 아버지의 곁을 떠나 오셨다. 이 천박한 은혜는 무분별한 연민이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값싼 것이 아니다. 아예 공짜다. 그래서 정통파에게는 늘 미끄러지는 바나나 껍질일 것이고 어른의 감성에는 동화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은혜가 덮어 줄 수 없는 무엇이나 혹은 누군가를 찾으려고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해 헉헉 거려도, 그 은혜로 충분하다. 은혜만으로 충분하다. 그 분으로 충분하다. 예수님으로 충분하다.”

그렇다. 넘어짐도 은혜다. 수없이 많이 넘어지고 피투성이로 깨어짐도 은혜다.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이 있는 한 은혜 아닌 것이 없다. 그 분이 계시는 한 모든 것이 은혜다. 은혜는 우리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흘러오는 것이다. 그렇다. 내 죄는 결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능가하지 못한다. 탕자는 결코 아버지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행한 선한 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는 아버지의 은혜로 평가받을 일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받은 은혜 또한 실로 컸다. 2013년의 책으로 기억될 듯한 느낌이었다. 이래저래 모든 것이 은혜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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