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박근혜시대 진입로에서 (4) 기사의 사진

“너무 철저해 여유가 없는 리더십은 지도자 자신조차 구속하는 틀이 될 수 있다”

새 대통령의 포스가 가장 강력하게 뿜어져 나와야 할 인수위 기간에 박근혜 당선인은 오히려 기(氣)를 잃고 있는 분위기다. 주로 인사 문제 때문이겠다. 애초에 ‘밀봉인사’라는 인상을 준 게 문제였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박 당선인 측근들이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려고 밀봉 퍼포먼스를 했겠지만 그 장면이 ‘불통’의 이미지를 아주 제대로 재확인시키고 말았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발표된 조각 인선 내용을 보면 오랜 기간 실무 경험을 쌓은 베테랑 관료출신의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주축을 이루는 구도다. 인수위 소속 인사들도 대거 발탁됐다. 그리고 일부 부처, 예컨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의 경우, 자신의 미래 구상을 구현해 줄 적임자를 찾으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안정 위주의 내각이어서 진취성이 좀 결여된 것은 아닌가, 그런 인상을 줄 수는 있다. 국민들이 ‘관료시대로의 회귀’라는 느낌을 가질 법도 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이 보여줬던 대학교수, 정치인 취향의 인사를 답습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유머가 있다.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천국으로 갔다. 그는 베드로에게 아주 의미 있고 책임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베드로가 천국의 합창단 구성을 맡겼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각 1만명씩 급히 구해주십시오.” “좋아 그런데 베이스는?” 루스벨트는 경멸하듯 베드로를 보면서 말했다. “베이스는 나 혼자 합니다.”(장수철 편, 세계인의 유머) 처음으로 이니셜, 즉 TR로 불렸던 그는 에너지와 의욕과 자신감이 넘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였다.

박 당선인이 실무중심, 전문가 위주의 내각을 구성하려는 데는 ‘정치는 대통령 혼자서 해도 된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일까? 또 ‘박근혜 시대’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서는 대학교수들의 조력을 받았지만 실제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는 일에는 실무경력이 풍부한 전문가들을 기용하겠다는 생각일까? 이건 나쁘달 게 없다. 오히려 바람직해 보이는 인선이다.

다만 21세기형 민주국가의 대통령은 비장한 심정으로 고독하게 결단을 내리는 초월자여서는 안 된다. 국민 속에서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며 국민과 함께 걷는 ‘뛰어난 보통사람’일 것이 요청된다. 그 점에서 박정희 시대가 필요로 했던 리더십과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에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박 당선인의 리더십이 어쩐지 위태해 보인다. ‘혼자 결단하고 혼자 책임진다’는 의식을 가진 게 아닌가 해서다. 정부조직 개편 이야기다. ‘밀봉인사’에 더해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확고한 고집’까지 겹쳐 ‘박 당선인표 불통’을 굳혀버렸다. 국정은 대통령이 이끌고 가지만 대통령 혼자만의 과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법률 사항은 국회의 소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당선인 측은 원안을 고집하고 있다.

박 당선인이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전화로 각별히 부탁까지 했는데도 여야 협상은 교착상태인 모양이다. 협상이든 대화든 기본 전제는 ‘양보’다. 각 측의 입장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접근해 가는 데 협상의 의의가 있다. 민주정치는 상대론에 바탕을 둔다. 야당의 의견과 입장을 존중·배려하는 게 민주의정의 제1보다. 직진할 수 있으면야 좋겠지만 때로는 멀리 돌아가기도 하고 되돌아가기도 하는 게 민주정치의 과정이다. 그런데 여당은 원안 고수만을 되뇌고 있다고 들린다. 협상대표가 아니라 통고자, 전달자 역할만 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너무 빈틈없어서 오히려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될 경우가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유격이 없는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는 대단히 위험하다. 교주고슬(膠柱鼓瑟), 비파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놓는 식의 고지식한 고집불통의 리더십은 지도자 자신에게도 고통을 줄 수 있다. 박 당선인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고 싶다.

이진곤 논설고문 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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