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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박병권] 준비된 대통령이라더니

[여의춘추-박병권] 준비된 대통령이라더니 기사의 사진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군주를 연상케 하는 지도자는 희망을 줄 수 없다”

공직 후보자 발표를 보면 왜 그렇게 군 면제자가 많은지 은근히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은 본인 아니면 그 자제들이 정상적인 군 생활을 하지 않은 경우가 유난히 많다. 물론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나는 갔는데 너는 왜 안 갔느냐’고 따질 수는 없다. 정말로 군에 가고 싶었는데 신체적인 또는 가정적인 결함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면제자가 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대할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공직후보자 가운데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공무원 생활의 경험을 밑천으로 퇴직한 뒤 민간 회사에 몸담아 수억원을 번 경우도 많다. 헌법에 직업선택의 자유가 엄연히 보장돼 있기 때문에 뭐라고 딱히 할 말은 없지만 평생 내 집 하나 갖지 못한 서민들은 이들의 처신을 선뜻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유세기간에는 입만 열면 국민대통합을 하겠다고 외치다가 막상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장관과 청와대 참모를 임명할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입을 싹 닦는 것은 국민 기만행위다. 대통령 취임 전인데도 지지율이 밑바닥을 헤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대선에 승리한 사람이 국민들로부터 포괄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아 고위 공직자를 임명한다고 하지만 상식을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역사상 이번처럼 공직 후보들이 비밀리에 선택되고 급작스럽게 공개된 적이 있었던지 모르겠다. 공개성 투명성 예측가능성은 민주사회의 기본 가운데 기본 아니던가. 유신과 독재의 이미지에 덧씌워진 대통령 당선인의 일방통행을 예견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정도가 심하다. 도대체 민주적인 훈련을 받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도 많다.

무엇보다 여야 정당을 대하는 태도는 우려스럽기조차 하다. 민주정치가 정당정치라는 것은 정치학 교과서의 1장1절에 등장하는 명제다. 내각제 국가는 말할 것도 없지만 대통령제 국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당선인 혼자가 아니라 여당도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에서의 크고 작은 선거가 심판 기능을 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포함한 집권당의 모든 것을 평가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번 고위직 인선에 집권당의 목소리가 반영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탕평이니 복지니 경제민주화니 외쳤지만 이런 가치들을 실현할 인재를 선발했는지는 의문이다. 자신의 안은 하나도 양보하지 않고 국정에 협조하라며 야당을 윽박지르는 듯한 모습도 보기에 거북하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고 포장했지만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고대 군주를 연상케 한다.

참모진을 대학동문회쯤으로 아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신성은 고사하고 대표성조차 제대로 갖췄는지 의심스럽다. 이전 정부에서는 한때 사형을 구형받았던 노동운동가를 노동부 장관에 임명하기도 했고 검사 출신들이 독차지했던 법무장관에 판사 출신을 임명하는 등 다양성을 선보이는 노력도 했다.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비춰지는 것은 통합과는 담을 쌓는 일 아닌가.

참모들은 이 같은 여론을 제대로 전달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번에 일약 ‘왕립대학’으로 부상한 학교의 선배 유생들은 동맹휴업 등을 통해 왕의 잘못된 처신을 바로잡으려고 애썼다. 이왕 선택됐다면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진정한 선비의 길로 들어서길 바란다. 도끼에 맞는 한이 있더라도 바르게 간하고, 가마솥에 넣어 죽이려 해도 옳은 말을 다하는 것이 충신이라는 포박자(抱朴子)의 말을 잊지 말기 바란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기죽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갑남을녀의 심사이기 때문에 인기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회복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다시 맘을 다잡고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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