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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정진영] 성지순례 단상

[삶의 향기-정진영] 성지순례 단상 기사의 사진

처음 경험한 성지(聖地)는 설렘과 기대를 넘어 경외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줬다. 오랜만의 해외 취재, 대상은 이스라엘 성지였다. 편서풍의 영향 탓인지 인천공항에서 텔아비브의 벤 구리온 공항까지는 11시간을 훨씬 넘겼다. 영하 15도의 한파에 출발했으나 현지는 영상 10도가 넘는 봄날이었다. 공항에는 우리를 초청한 이스라엘 관광부 소속의 유대인 글리스코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50대 후반인 그는 여정 내내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함께했다. 텔아비브에서 첫 목적지인 예루살렘까지는 차로 50여분. 도로변 곳곳에는 10m가 넘는 높은 담장이 서 있었고 무장한 경찰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십자가의 길과 예수 고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서도 성경의 흔적이 가장 많이 배어있는 곳이다. 시온산, 통곡의 벽, 실로암 연못, 다윗성, 최후의 만찬 교회, 베데스다 연못 등은 성지 순례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어 올라간 고난의 현장인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는 빠뜨리지 않는 성소(聖所)다. 헤롯 안토니우스 요새로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400여m의 이 길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를 드리며 걷는 구간으로 모두 14곳으로 나눠져 있다. 한국인을 비롯 유럽과 미주대륙, 아시아 등 여러 곳에서 온 인파들로 좁은 골목길은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걷기가 힘들었다. 예수가 쓰러지거나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을 지나 마침내 예수의 무덤이 있는 마지막 지점까지 가는 내내 2000여 년 전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의 공생애가 떠올랐다.

실로암 연못은 지금 보기에 외관은 초라하나 예수가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해 준 성지(聖池)다. 인접한 수백 미터의 캄캄한 히스기야 터널을 빠져나온 순례자들이 마침내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환호하듯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의 빛이다’(요 9:5)라며 우리에게 빛으로 오신 예수의 숨결이 느껴졌다.

예루살렘에서 차로 2시간30분 정도 북으로 달리면 갈릴리 호수다. 예수는 이곳에서 어부 베드로를 비롯해 안드레와 야고보를 만났고 풍랑이 이는 호수를 잔잔케 하는 기적을 드러냈다(마 8:23∼27). 2월 중순인데도 호수 주변에는 겨자가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3월이면 붉은 아네모네까지 곁들여져 꽃들이 지천에 널린다고 안내자는 설명했다. 제대로 된 순례자들은 갈릴리 호수 둘레를 며칠씩 걸으며 오병이어의 기적과 가버나움을 떠올렸겠으나 촉박한 일정상 갈릴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되새겨보는 사순절 의미

흔히 성지순례는 몸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라고 한다. 예수의 시대로 돌아가 성경의 그 곳, 그 의미를 발로 걸으며 오늘에 되새겨 보기 때문이다. 때마침 내가 이스라엘 성지를 찾은 때는 사순절(2월 13일∼3월 30일) 기간이었다.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기에 더 이상 적합할 수 없는 기회였다. 성도들과 한국교회들은 사순절을 묵상으로 맞는다. 묵상집을 내는 교회도 여러 곳 있다. 그만큼 사순절은 경건과 절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사순절에 나의 부족한 신앙과 한국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착잡하다. 예수의 대속에 대한 우리의 회개보다는 부활의 영광만을 노래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십자가의 길’에서 맞는 사순절은 예수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정진영 종교국 부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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