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34) 아버지 옥한흠 기사의 사진

아버지 옥한흠 (옥성호 지음, DMI)

이 책은 연전에 우리 곁을 떠난 고 옥한흠 목사에 대해 가까이서 그 삶을 지켜 본 아들이 쓴 것이다. 책을 쓴 계기는 프란시스 쉐퍼와 그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느낀 바가 있어서였던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 지상의 이 두 관계는 본체와 분신처럼 지내면서도 피차에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결별하게 된다. 그리고 이별의 순간이 다가와서야 전에 알지 못했던 모습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목사 옥한흠은 지나간 세대의 허다한 예술가처럼 유명을 달리하고 나서 한국교회에 더 빛을 발한 분이었다. 교회가 세습이나 재산문제 같은 것으로 어지러울 때면 어김없이 그분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서 목회자에게 있어서는 천국의 삶뿐 아니라 지상의 삶에 있어서도 그 존재가 소멸된 후까지도 삶이 계속되는구나 하고 느낀 바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버지’와 ‘아들’ 두 관점에서의 ‘관계’에 대해 우선 살펴보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 참으로 수많은 말없는 언어와 눈빛 속에 녹아드는 그 관계에는 생각보다 착잡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어디선가 읽은 한 글이 떠오른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짓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딸들이 나를 닮았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최고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께름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옥한흠은 우여곡절 끝에 뒤늦게 성직자의 길을 걸으려고 하는 아들에게 손수 모범을 보였다. 일반적인 아버지나 가장으로서의 모범이라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제자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관점에서 보인 모범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들의 눈에 비친 옥 목사는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스승인 셈이었다. 아들 옥성호는 말하자면 집안에서 평생 탁월한 교사로부터 수업을 받은 셈이다.

목사 옥한흠은 생전 한국교회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많이 받는 분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평신도를 깨워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데 열심인 사람이었다. 예수에 대해 교육시키고 그분의 제자로 양육시키기에 진력한 사람이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예수 제자 양성에 온 힘을 쏟아부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중의 교인들에게 했던 이 제자훈련 방법을 그는 아들에게도 오롯이 적용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그 생의 마지막 시간표가 다가올 때까지 한 사람의 제자이자 아들을 앞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도’에 대해 가르친다.

“내가 목사가 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얼마 후 12월 5일 아버지의 생신이었습니다. 그때는 설마 그날이 아버지의 마지막 생신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오후 부모님과 나, 세 사람은 거실에서 조촐한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그날 디모데전서 1장 12∼17절의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호야, 목사에게 필요한 건 딱 하나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야 하고, 그 은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목사는 딱 두 종류가 있다. 은혜를 아는 목사와 은혜를 모르는 목사다. 은혜를 모르는 목사가 설교를 하면 그럴듯하기는 한데, 그 설교는 결코 듣는 사람의 영혼을 때리는 울림이 없다. 성령의 감동이 없다. 너는 그런 설교가 어떤 것인지 가장 잘 알지 않니? 그게 바로 은혜의 차이 때문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다음부터(현재 옥성호는 목회자는 아님) 옥한흠, 옥성호의 관계는 부자관계보다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더 가속도가 붙어 이런 식의 밥상머리 제자훈련은 시도 때도 없이 이어졌다. 지상에서의 삶의 종장이 의외로 빨리 다가오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스승 옥한흠은 제자 옥성호를 향해 다양한 가르침을 쏟아놓지만 때때로 제자인 아들은 그 가르침들이 지겹거나 잔소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산소호흡기를 꼽고 가쁜 숨을 몰아쉴 때에 아들은 그토록 지겨워하던 아버지의 잔소리를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목사 옥한흠은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 세월이 가면서 그도 곧 구전과 설화로 남겨질 것이다. 그러나 가장 든든한 한 사람의 증언자가 그 곁에 서 있다. 그것은 “아들”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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