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송세영] 기적의 땅, 일본 도후쿠 기사의 사진

뜻밖이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을 강타한 규모 8.9의 강진과 쓰나미(지진해일), 원전 폭발이라는 대참사는 2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절망과 비탄에서 희망으로

쓰나미에 휩쓸려간 미야기현 나토리시의 바닷가 지역은 황무지로 변해 있었다. 가로 세로로 구획돼 있어 겨울철 휴경 중인 논밭인가 했지만 모두 집터, 건물터였다. 건물 잔해들을 처리하는 공장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뿐 사람 사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라하마시의 초등학교 건물은 철문이 굳게 닫힌 채 철거를 앞둔 건물처럼 방치돼 있었다. 3층 높이의 체육관과 4층 높이의 본관으로 구성된 이 학교는 당시 쓰나미로 3층까지 물이 차올랐다. 체육관으로 피한 27명의 주민들은 모두 목숨을 잃고 학교 본관에서도 옥상으로 피한 이들만 겨우 목숨을 건졌다.

나토리시에서 만난 일본인 목사는 10m 높이의 고가도로를 가리키며 “물이 고가도로 바로 아래까지 차올라서 고가 위로 피한 사람은 살았지만 그 아래 있던 사람은 모두 떠내려갔다”고 말했다. 당시 쓰나미는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위력이 몇 배 더 강했다.

도호쿠는 정신적, 영적으로도 폐허상태였다. 일가족을 모두 잃은 이들, 집과 고향은 물론 삶의 추억까지 빼앗긴 이들은 극도의 허무함과 절망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디에서도 위안을 찾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깊은 절망과 고난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의지한 이들은 달랐다. 가족과 친척을 합해 모두 21명을 잃은 한 여성도는 ‘옛 집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만이라도 구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뒤 건물더미 아래에서 물에 젖은 한 장의 사진을 기적처럼 찾았다고 눈물로 간증했다. 쓰나미로 고향 마을이 사라져버린 한 목회자는 “처음에는 우리에게 왜 이런 슬픔과 고통을 주시느냐고 원망했지만 이제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은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가 얻은 것은 많은 이들의 사랑과 기도였다. 현지 목회자와 성도들은 특히 한국교회의 지원과 기도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한국교회는 사고 직후 곧바로 피해현장을 찾아 긴급구호에 나섰다. 원전 폭발 이후 도호쿠를 떠나 남쪽으로 피난 가는 차들이 줄을 이을 때 도쿄에서 출발한 한국교회 구호팀은 생수와 비상식량, 담요 등을 가득 싣고 도호쿠를 향해 거슬러 올라갔다. 주유소마다 피난차량이 장사진을 이뤄 몇 시간을 기다려 겨우 10∼20ℓ 주유할 수밖에 없었다. 중도에 기름이 떨어지면 방사능 위험 지역에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담대하게 전진했다. 검문 중인 경찰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지만 “재해민들이 우리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경찰은 모든 주유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주유할 수 있는 ‘긴급차량’ 스티커를 차창에 붙여줬다. 구호팀은 순풍에 돛을 단 듯이 달려가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로하고 긴급 구조활동에 나섰다.

부흥·재건의 기도 계속돼야

도호쿠는 서서히 절망의 땅에서 기적의 땅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교회는 철저한 회개와 기도를 통해 영적 부흥을 이루려 한다. 한국교회는 수십년 전부터 선교사를 파송하며 일본 복음화를 위해 기도해왔다. 일본교회는 지금 한국교회의 뜨거운 기도를 절실히 요청하고 있다.

센다이=송세영 종교부 차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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