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산을 옮기는 법 기사의 사진

“상호 신뢰를 회복할 때라야 국정을 가로막은 산은 바다에 던져질 것이다”

지금 여기 산이 있다. 아주 커다란 산이 먼 산수 간(間)이 아니라 도시 한 복판에, 우리의 삶 한 가운데에 떡 버티고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청와대에,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와 각 기관에 자리 잡은 산은 각 영역에서 오가고 나눠야 할 세부 단위들을 가로막고 있다. 산은 인간세상 어디에나 있는 것이지만, 요즘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거의 전 영역에서 소통을 가로막는 것은 일찍이 없던 일이다. 새 대통령이 취임했어도 보름 넘게 정부가 조직을 갖추지 못하고, 장관 임명과 청와대 비서진 인사도 발표되지 않고 있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시대의 어떤 조짐으로 받아들일 만한 일일 것이다.

산이 이렇게 높아진 기점은 지난 연말의 대통령 선거라고 봐야 한다. 전 국민이 총궐기하다시피 한 진영 대결로서의 대선은 긴장과 적대감을 최고치로 높였다. 그런 만큼 대선이 끝나고 카니발이 필요했다. 그러나 대선을 치르고 나서 긴장과 적대감을 풀어내는 축제는 전무했다. 국민 대통합을 위한 조치가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미미했고, 승리한 측의 양보와 패배한 측의 성찰과 인내도 없었다.

그런 마당에 북한은 연일 선전포고를 방불케 하는 발언을 쏟아내며 핵전쟁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20년 이상 주민을 굶주림 속에 몰아넣고 의도적으로 남북 간 긴장상태를 부추기는 데 골몰하는 북한 당국에 우리가 우선적으로 보여줘야 할 것은 ‘불가침 합의 폐기’와 같은 황당한 말싸움의 수준으로 우리가 함께 전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3대 세습에 핵전쟁 협박까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을 크게 넘어버림으로써 정권의 존립 가능성이 짧아 보이는 북한의 미래에 대비한 냉정한 정책과 새로운 국면을 열 창의력이 요구된다.

그 눈부신 돌파력을 보여주는 특이한 예화가 신약성서에 나온다.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던 어느 이른 아침 예수는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나무를 시들게 만든다. 이를 기이하게 여기는 제자들에게 그는 설명한다.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하고 말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

때가 됐음에도 여전히 결실을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 불신의 거대한 산맥을 단번에 제거할 수 있는 이런 놀라운 믿음의 테마는 지금 우리 사회에 전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관계의 진실성이 매우 취약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현대 민주국가에서의 정부조직과 고위공직이 대통령의 일방적 지명이 아니라 각종 제도와 시스템을 통한 사회적 선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때 우리사회는 아직 고위공직 선출의 사회적 합의와 같은 민주적 역량은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대통령 선출의 시스템은 갖추었지만 그것이 너무 큰 갈등을 야기하고 있기에 그 다음 단계의 신뢰와 합의의 메커니즘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통의 목표인 사회의 공동선을 바라보며 서로의 믿음을 갖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우리 사회는 놀라운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한국의 역동성과 근면성 위에 온갖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 신뢰의 메커니즘이 형성된다면 경제난 극복은 물론 북핵 문제를 해결할 만한 창의력의 탄생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북한의 문제는 당연히 한국의 문제다. 6자회담과 같은 대화로 경색국면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데 동의하더라도 현재 상황은 문제 해결의 당사자인 한국으로부터 창의적인 해법이 나와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전제는 정부조직 개편안 통과와 내각 구성이 조속히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선택한 새 정권 담당 세력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동시에 비판·반대의 시각으로 정국을 진단하는 야당에 대한 정치적 믿음이 구축돼야 한다. 지금 소통이 시대적 숙제라면 소통의 열쇠는 ‘신뢰’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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