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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패트릭 데이, 바로 알자!

김선일 박사(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매년 3월 17일은 성 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다. 우리에겐 생소한 날이지만, 서구인들에게는 제법 큰 축일이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 패트릭(386-461)은 원래 영국 출신으로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등지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였으며, 3월 17일은 바로 그가 죽은 날이다. 이 날은 아일랜드의 최대 축일 일뿐 아니라, 그 후손들에 의해서 영국, 미국, 캐나다 등지로도 확산되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성 패트릭 데이 전날이자 토요일인 3월 16일에 신도림역 디큐브시티에서 행사가 열리는데, 들리는 말로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들이 집결하는 날이라고 한다. 이 날은 미 8군 밴드가 참여하고, 아일랜드 춤과 음악 등이 공연되며, 그들의 문화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진기한 타문화 체험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치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흥청망청 즐기듯이, 서구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성 패트릭 데이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 사람들은 대부분 무지하다. 필자가 미국 유학시절, 성 패트릭 데이는 휴일은 아니지만 초, 중,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이 날을 기념하는 의미로 등교 시 초록색 옷을 입고 오도록 권장한다. (짓궂은 아이들은 이 날 초록색 옷을 안 입고 온 아이를 몰래 꼬집고 도망가기도 한다.) 또한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아일랜드의 전통 흑맥주인 기네스를 하루 종일 마시는 날로만 알려져 있다. 왜 이날 온통 초록색 복장을 입는지, 왜 클로버 아트가 가장 대표적인 장식이 되었는지 그 유래를 알면 신앙인으로서 성 패트릭 데이를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 선교를 하기 오래 전에 아일랜드의 켈트족 해적들에 붙잡혀 노예로 지낸 후에 극적으로 도망쳐 나온 적이 있었다. 켈트족(Celts)은 주로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지역의 원주민들인데, 인종적으로는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하였으며 고대 로마군대를 벌벌 떨게 만든 용맹한 무사들로 유명하다. 그러나 문명화된 로마인들이 보기에 켈트족들은 야만인들이었다. 더군다나 로마제국이 기독교화 된 이후로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로마의 논리와 체계에 맞춰졌다. 따라서 당시에는 켈트족과 같은 야만인들이 복음화 되려면 먼저 기독교 로마 문명에 교화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이러한 편견에 맞서서 아일랜드의 야만족으로 알려진 켈트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한 이가 바로 성 패트릭이었다. 노예 시절 소년 패트릭은 명목상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아일랜드의 넓고 푸른 초원에서 쓸쓸히 소와 양들을 돌보는 가운데 자연 속에서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한다. 그 뒤 꿈속에서 천사의 계시를 받고 그곳을 탈출하여 영국으로 돌아가서 후일에 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 수십 년이 지나고 그는 꿈속에서 “거룩한 노예 소년이여, 와서 우리를 구해다오.” 라는 한 켈트인의 절규를 듣게 된다. 그 길로 로마 교황청에 건의해서 켈트족들을 향한 선교는 불가능하다는 당시의 편견에 맞서서 켈트인들을 위한 선교사로 아일랜드 땅을 다시 밟게 된다.

켈트인들은 비록 개화된 문명인들은 아니었으나, 자연을 사랑하며 시와 노래, 상징을 즐기는 민족이었다. 성 패트릭이 노예로 지내면서 배운 켈트족의 언어와 문화는 그의 효과적인 선교를 위한 결정적 기반이 된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행하던 올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이에 대한 동의를 요청하는 식의 복음전파를 하지 않고, 먼저 선교사들의 공동체로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교제하며 복음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해줬다. 성 패트릭은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는 켈트인들의 심성에 맞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상징이 켈틱 십자가(celtic cross)다. 켈트인들의 재래 종교는 태양을 숭배하는 드루이드교였는데, 패트릭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태양을 관통하며, 태양보다 더욱 큰 십자가의 이미지를 겹치게 함으로 더욱 새롭고 강력한 종교를 전파했다. 또한 영웅담과 무용담을 즐기는 켈트인들에게 성경 인물들의 삶을 생생한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성 패트릭이 사용한 자연의 상징 중 백미가 바로 클로버라 불리는 토끼풀(shamrock)이다. 그가 전하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한 분이신 동시에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는 신비를 그는 세 잎사귀를 지니면서 하나인 토끼풀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기독교 신학의 가장 신비로운 진리인 삼위일체 교리가 논리적, 분석적 사고에 익숙한 당시 로마인들에게는 매우 난해한 반면, 직관적이며 감성적이고 생태적인 켈트인들에게는 그리 어려움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삼위일체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결코 끊을 수 없는 관계와 연합됨을 의미했다. 켈트인들이 가장 즐기던 취미가 매듭 묶기였기에, 성 패트릭은 결코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묘사했다. 또한 켈트인들은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였기에, 성 패트릭과 그의 후계자들은 바람과 물소리, 새의 노래 등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찬양하는 법을 가르쳤다. 새들에게 설교했던 성 프란시스보다 훨씬 앞서 이미 성 패트릭과 켈틱 선교사들은 자연친화적인 생태적 선교를 실험했다.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를 복음화했을 뿐 아니라, 켈트족의 각종 악습들을 개혁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중세 시대의 가장 독보적인 선교 사역이었으며,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독특하게 빛나는 아일랜드 선교사인 성 패트릭을 기념하는 날이 곧 다가온다. 남들의 잔치로 무심히 넘기기엔 켈틱 선교의 유산이 너무도 소중하며, 영문도 모르는 채 초록색 의상을 입고 기네스 맥주를 달고 놀기에는 성 패트릭의 고결한 삶과 너무도 빗나간다. 교회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이 날을 기독교적으로 기념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다. 먼저, ‘일반은총 주일’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며, 그가 지으신 자연세계를 보존하고 이에 대한 청지기적 사명을 되새기는 날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는 이 날을 전후해서 ‘그린 데이’(Green Day)로 지정하며 가족이 함께 산책을 하며, 우리 주변의 꽃과 나무와 흙을 관찰하고 감사할 수 있다. 여기에 초록색 의상이나 소품까지 곁들이면 재미는 배가될 것이다. 또는 우리보다 주한 외국인들이 더욱 관심을 보이는 날이니, 교회에서 그들을 위한 문화선교 행사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함께 모여서 기도하며 생각을 모으면 할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문제는 그 날의 본질적 의미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성 패트릭 데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단지 서양인의 축제로 지나치기엔 손해 막심할 풍부한 신앙 유산을 담고 있다.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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