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씨가 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주인공 엄석대는 치기 어린 영웅심리로 약자를 괴롭히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시골 초등학교 작은 교실의 영웅이다. 그의 말에 반 아이들은 복종하고, 비행을 알면서도 선생님은 묵인한다. 자아가 형성돼 가면서 제임스 딘처럼 오토바이를 멋지게 타며 ‘이유 없는 반항’을 하고 싶고, 버버리 코트 깃을 휘날리는 주윤발처럼 영웅놀이도 하고 싶은 게 사춘기 청소년들이다.

1999년 일본 배우 이주인 히카루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진 ‘중2병(中二病·추니뵤)’은 이러한 중학교 2학년 무렵 청소년들의 심리적 상태를 일컫는 용어로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일본 ‘오타쿠 용어의 기초지식’에선 중2병의 전형적인 증세로 6가지를 설명한다. 서양 음악을 듣기 시작하고, 맛도 없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인기 밴드 그룹에 대해 “뜨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정색을 하고, 무엇이든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줘”라고 말하기 시작하고, 사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역사에 대해 좀 알게 되면 “미국, 추잡하지”라고 무시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중2가 무서워서’라는 우스개가 유행하기도 했다.

경쟁과 입시지옥에서 탈출구가 없는 아이들이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되는 게 요즘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이다. 친구들의 집단괴롭힘에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나, 꽉 막힌 세상에서 친구에 대한 폭력으로 치기를 분출해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 모두 우리가 품어야 할 소중한 자녀다.

시골길을 따라 학교를 오가면서 친구들과 헤르만 헤세와 루이제 린저를 얘기하고, 프로야구 우승팀에 내기를 걸던 순수했던 30여년 전 우리들의 사춘기 모습과는 달리 삭막한 아스팔트 도시에서 학교와 학원, 집을 쳇바퀴처럼 오가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잘못이 있다면 ‘최고가 돼야 한다’며 아이들을 끝없는 경쟁사회로 내몰면서 아이들의 소리 없는 절규에 귀 기울여주지 않은 어른들에게 있지 않을까.

서울시교육청이 그제 중2병을 없애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모든 중학교 2학년생들을 학교 체육대회 때 단축마라톤에 의무적으로 참가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가족과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해피스포츠클럽데이’도 운영한다고 한다. 취지는 좋지만 근본적 교육개혁 없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는 전시성 행사로 그치지 않을지 걱정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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