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찬규] 정전협정 ‘백지화’는 무효다 기사의 사진

지난 5일 북한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전쟁연습이 본격적인 단계로 넘어가는 3월 11일부터 정전협정의 효력을 전면 백지화하고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단의 활동도 전면 중지할 것”이라며 “판문점 조·미 군부전화도 차단하겠다”고 언명했다. 여기서 전쟁연습은 연례적 한·미연합군사훈련인 키 리졸브와 독수리연습을 지칭하는 것이다.

지난 8일에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조선정전협정이 완전히 무효화되는 11일 그 시각부터 북남 사이의 불가침에 관한 합의들도 전면 무효화될 것”이라며 “판문점 연락통로의 폐쇄 및 북남 간의 직통전화도 즉시 단절될 것”이라고 했다. 8일자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휴전상태가 백지화되면 언제든지 전쟁을 재개해도 국제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다”고 보도함으로써 북한의 속셈이 국제법적 굴레에서 벗어나 행동자유를 얻으려는 데 있음을 내비쳤다.

정전협정을 백지화하면 전쟁상태로 되돌아가 언제든지 전쟁에 호소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가. 19세기 국제법은 그러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1907년 제2차 만국평화회의 때 채택된 육전규칙(陸戰規則)은 군사정전을 ‘전투의 잠정적 중단’이라 규정하고 기간을 정하지 않았을 때는 언제든지 전투 재개가 가능하다고 규정했다(제36조). 그 당시에는 전쟁이 금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엔헌장 하에서는 전쟁은 물론이고 전쟁에 이르지 않는 무력행사, 무력의 위협, 나아가 유엔의 목적과 상치되는 일체의 행동이 금지되고 있다(제2조 4항). 이 같은 유엔헌장 하에서는 정전협정이 백지화됐다고 해서 전쟁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더구나 한국정전협정은 ‘최종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의 무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체결된 것이었다(전문). 이것은 한국정전협정의 경우 ‘전투의 잠정적 중단’이 아니라 전쟁의 종결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 국제법 하에서는 정전협정이 백지화된다고 해서 전쟁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한국정전협정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정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이래 핵심적 규정은 모두 효력을 상실하고 군사분계선(MDL)에 관한 규정만 살아 있다. 북한 주장대로 정전협정이 백지화될 수 있다면 남북 간의 경계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국제법상 경계선은 국경선, 해양경계선, 군사분계선 할 것 없이 한번 설정되면 그 근거가 된 국제조약의 운명에 관계없이 당해 지역에 부착돼 정착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를 경계선의 속지성(屬地性)이라 한다. MDL도 속지성을 지니기 때문에 그것을 창설한 한국정전협정의 운명과 관계없이 존속한다고 보는 것이 국제법적 해석이다. MDL은 정전협정에 의해 창설된 것이지만 그 속지성으로 해서 협정의 운명과는 관계없이 계속 유효하며 관계 당사자 간의 별도의 합의에 의해서만 변경될 수 있다.

지금 남북 간 최대 현안 중 하나가 서해 북방한계선(NLL)이다. 한반도에는 MDL이 있어 경계가 분명하지만 서해 5도와 북한 사이에는 그것이 없어서 정전체제의 유지가 어렵게 되었다. 해상 MDL이 설정되지 못한 것은 북측과 유엔군측 사이에 있었던 중대한 이해관계의 대립 때문이었다. 협정 발효 직후 유엔군 측은 정전체제의 실효성을 위해 서해 5도와 북한 사이의 대략적인 중간선을 따라 선을 긋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NLL이다.

NLL은 유엔군 측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이지만 목적이 정당하고 방법이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20년간에 걸친 북한의 묵종(默從)이 있었다. 그것은 정전체제의 일환으로 굳어졌으며 그것에 대한 도전은 정전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북한의 주장대로 정전협정이 백지화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NLL은 MDL과 같이 존속하게 된다는 게 국제법적 판단이다.

김찬규 (국제해양법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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