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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역사와의 대화’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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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들이 종종 오만과 독선에 빠진 건 현실과 괴리된 판단 때문”

“대통령에 당선됐다면 정치를 비롯해 다방면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권력의지와 카리스마, 추진력, 판단력, 열정도 강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신보다 나은 인물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국정 현안이 발생했을 때 홀로 결정하고, 밀어붙인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강조한다. 반대 의견이 나오면 ‘뭘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는 정도로 치부(置簿)한다. 독선적이라는 지적도 무시한다. 왜 그럴까. 대통령이 역사(歷史)와 대화하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자인 자신과 대화할 만한 인물이 주위에 없다면서 역사를 대화의 상대로 삼는 것이다. 군부독재시절이 끝난 이후의 대통령들도 종종 그랬다. 매우 위험한 착각이다.”

오래전에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의 전언이다. 대통령이 역사와 대화하는 것 자체를 나무라는 게 아니다. 동서고금을 망라한 인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등 긍정적 측면이 적지 않다.

다만, 역사와의 대화가 ‘대통령 본인=선(善)’이라는 잘못된 확신으로 이어지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확신은 오만과 독선, 독주를 낳는다. 그럼에도 역대 대통령들을 회고하면, 이따금 어처구니없는 고집을 부리거나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경우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여론은 물론 참모와 전문가들의 고언을 묵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결과는 민심이반으로 나타난다. 현실과 괴리된 역사와의 대화에 몰두하다 보면 국민들보다 훨씬 앞서 가기 마련이다. 그러고는 국민들을 향해 “빨리 따라오라”고 재촉한다. 국민들은 무슨 영문인지 얼떨떨해하다 이내 “뭐 저런 대통령이 있나”라는 볼멘소리를 낸다. 나아가 “잘났어, 정말”이라는 조롱과 냉소를 보내기까지 한다.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로 지지도가 추락한 뒤에야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

비근한 예로, 이명박 정부 초기의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들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왜 그렇게 무모하게 일을 추진했는지 지금도 의아하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아무 하자가 없더라도 먹거리라는 민감한 현안인 만큼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했는데, 이 전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집권 기간 내내 ‘촛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6월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라는 유례없는 카드를 느닷없이 들고 나와 파문을 일으킨 것도 유사한 케이스다. 노 전 대통령은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대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편지를 세 차례나 보냈다. 그러나 여야 모두 꿈쩍도 않자 노 전 대통령은 3개월여 만에 대연정 카드를 접었다. 노 전 대통령의 돌출행동에 국민들이 어리둥절했던 것은 물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국민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분열과 갈등을 빚어 왔던 역사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상생과 공생의 정신은 선조가 우리에게 물려준 훌륭한 자산입니다. 이제 상생과 공생의 정신이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 스며들도록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언행은 이것과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박 대통령이 거의 혼자 했다는 인사(人事)부터 그렇다.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어이없는 이유로 사퇴하는 등 잡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대탕평 의지도 찾기 힘들다. 우여곡절 끝에 타결되긴 했지만, 정부조직법을 둘러싼 협상과정에서 ‘상생과 공생’은 실종됐다.

박 대통령의 현재 스타일을 굳이 분류하자면 강성이다. 그 바탕에는 2005년 야당 대표 시절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과거사법, 신문법을 ‘4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당내 일부의 반대에도 끝까지 싸워 성과를 거둔 경험 등이 깔려 있을 듯하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여느 대통령들처럼 역사와의 대화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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