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38·끝) 사랑 그리고 마무리 기사의 사진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이석태 옮김, 보리)

“삶에서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는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이다. 죽음은 삶의 절정이자 마지막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존재는 죽음으로 자신을 새롭게 한다…. 삶은 다만 죽음을 향한 순례이기 때문에 죽음은 삶보다 더 신비로운 것이다.”

라즈니쉬가 했다는 이 말처럼 죽음은 시시각각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 죽음을 이집트 ‘사자의 서’에서는 이렇게도 말한다. “죽음은 병든 사람이 회복하는 것같이, 병을 앓고 난 후에 정원으로 나오는 것같이 오늘 내 앞에 있다. 죽음은 여러 해 동안 갇혀 있는 사람이 간절히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오늘 내 앞에 있다.”

이 책은 은둔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였고 농부였던 스콧 니어링과 반생을 함께한 그의 아내 헬렌 니어링이 스콧의 죽음을 기점으로 하여 두 사람의 삶을 반추해 본 일종의 명상록이다. 이 부부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던 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주제를 마치 면벽하고 화두와 씨름하는 선승들처럼 치열하게 사색하였고 그 사색의 결과를 저술로 남겼다는 점 때문이었다.

우선 스콧 니어링은 개인적 고난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열심히 자기 앞의 생(生)을 통찰한 지성인이었으면서 죽음 또한 비상한 자기만의 방법으로 맞아들였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그 아내 헬렌 또한 남편의 그러한 삶과 죽음의 궤적을 공적 논리의 관점에서 통찰력 있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스콧은 스스로 지은 버몬트의 농장에서 농사와 저술 그리고 강연을 하면서 역동적인 삶을 펼쳐 나갔지만 만년에 죽음이 자기 앞으로 걸어온다고 느끼던 순간부터 서서히 곡기를 끊어버린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이런 방식의 죽음을 놓고 시비를 벌이는데, 명백한 자살이라는 입장과 주도적으로 죽음을 수용한 위대한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나뉜다. 아내 헬렌은 후자의 입장에 선다. 그녀는 두 사람의 삶이 한 사람의 육체적 소멸 이후로도 굳건하고도 견고하게 이어진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홀로된 삶이 되어서도 새로운 전망과 모험, 그리고 가능성을 바라보게 된다고 고백한다.

“53년 동안 함께 살았던 스콧이 만 100세가 된 지 3주일 뒤 메인에 있는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 날 하나의 장이 막을 내렸지만, 내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그이와 더불어 계속되고 있다. 그이는 오랫동안 최선의 삶을 살았고, 일부러 음식을 끊음으로써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삶을 마쳤다. 나는 느슨하게 그이 손에 마지막까지 쥐어져 있던 고삐를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나보다 스물한 살이 많은 스콧이 먼저 갈 가능성이 많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거의 그 생각은 하지 못하고 지내왔다. 스콧은 매우 건강하고 힘차게 활동했으며 삶에 충실했으므로, 언제나 그렇게 살아갈 것만 같았다. 나는 무대 밖으로 사라진 그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때가 되었고, 그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떠나갔다. 그이는 나보다 조금 앞서 우리의 조화로운 관계 밖으로 떠나갔다.”

그렇다. 죽음은 어느 날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방문하는 반갑잖은 손님처럼 우리들의 문을 노크한다. 그 존재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두고 허다한 종교와 철학이 제각기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고 논쟁한다. 그 점에서 볼 때 스콧 니어링은 적어도 ‘죽음’을 삶과 마찬가지로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체험하려 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죽음에 의해 삶의 존엄이 훼손되거나 흐트러질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이 단식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불러오기는 했지만 죽음을 계속되는 삶의 한 형태로 인식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실천적 지식인 혹은 종교인이라 할 만한 것이다.

헬렌은 남편이 삶의 수많은 굴곡과 애환, 그리고 아픔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긍정적이고 열정적이었으며, 그리고 헌신적이었는가를 기술함으로써 혹시 있을지도 모를 비관적 염세주의자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치열하게 살아냄으로써 죽음을 삶 속에 초대해 녹여버리는 것이 낫다는 게 스콧의 생각이고 그 생각에 아내인 헬렌은 박수와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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