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대국민 사과’를 비서실장이? 기사의 사진

“윗사람이 국민 앞에서 孤高하려 하면 아랫사람들은 국민에 대해 오만해진다”

참선 중이던 제자가 조주 선사(중국, 778∼897)에게 가장 다급한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선사는 다급하게 일어나며 말했다. “오줌 좀 눠야겠다. 이런 사소한 일도 이 늙은 중이 직접 해야 하는구나!”(조오현, 선문선답)

불교도가 아니니 이런 선문답의 뜻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저 문자 그대로 읽을 뿐이다.

청와대가 30일 오전 아주 힘겹게 인사난맥상에 대해 사과를 했다.

“새 정부 인사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서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인사검증 체계를 강화하여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겸 인사위원장 명의의 사과문을 김행 대변인이 춘추관에서 대독했다. 아주 간략하다. 군더더기 없는 사과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화법인데 허 실장이 이 점까지 닮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좀 더 진지하고 겸손한 느낌을 주도록 문장을 만들고 다듬을 수는 없었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장·차관 등에 대한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인사 스타일, 과정, 결과가 좋지 못했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왕조시대라면 모르겠거니와 지금은 민주의 시대다. 인사위원장이란 대통령의 명에 따라 적임자를 추천하고 검증하고 하는 기구의 책임자일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허 실장이 자신의 명의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는 것인지 이 또한 이해가 안 된다. 허 실장이 대통령의 뜻을 전하는 형식이었다면야, 국민의 입장에서 좀 섭섭한 점이 있더라도 그러려니 할 수가 있다. 그런데 허 실장의 사과를 대변인이 전했다. 인사위원장 자리도, 국민에게 직접 사과하기에는 너무 높다는 것인가.

아랫사람에게 시킬 일 따로 있고, 자신이 직접 할 일 따로 있는 법이다. 고귀한 신분이라도 밥은 스스로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잠도 호흡도 자신이 해야 한다. 직분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직분을, 비서실장은 비서실장의 직분을 스스로 다해야 한다. 허 실장은 일전 수석비서관들에게 ‘받아쓰기만’ 해서는 정무 비서라고 할 수 없다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으로는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하고, 밖으로는 적극적으로 정책 홍보를 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대변인을 내보내 말을 전하게 하는 것으로 직분을 다한 양 했다. 사과는커녕 무례를 범한 게 아닌가.

딱히 어울리는 예라고 하긴 어렵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 1월 23일 청와대 안가에서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했다는 말이 곱씹어진다. “안 대표, 당신 많이 컸네”라고 한 것으로 일전 동아일보에서 읽었다.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감사원장으로 기용하려 했다가 야당은 물론 여당의 반대까지 겹쳐 좌절당한 후였다. 여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그 10여일 전에 정 감사원장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던 안 대표를 보며 이 대통령은 ‘싸늘하게’ 그 말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언어’가 이럴 수는 없다. 그만큼 화가 치밀었던 탓이라 이해하자고 해도 그런 표현은 거북하다. 대통령은 혼자 있을 때에도 대통령으로서의 격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어려운 자리라고 하는 것이다.

더욱이 문제는 한나라당의 안 대표가 많이 컸기 때문에 빚어진 게 아니다. 이 대통령 자신의 독주형 리더십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여야 정당, 그리고 국회와의 소통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집권당과는 긴밀한 대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대통령 혼자서 이끌어가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명박 시대에 이어 박근혜 시대에도 대화 부재의 정치, 일방적 통고형의 정치가 되풀이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대통령은 노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대신 시킬 수 없는 일, 시켜선 안 될 일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윗사람이 고고(孤高)하려고 하면 아랫사람들은 오만해지고 만다는 점도 각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진곤 논설고문 (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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