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장애인 거주지 부자동네에 세워 ‘통합의 극치’… 님비현상 없어 기사의 사진

복도에서 만난 바바라 슈페르카씨는 방을 안내해주겠다며 한국 방문객을 이끌었다. 세 자매와 함께 이웃 도시에서 살던 그는 6년 전 장애인 그룹홈 ‘동행주거’에 입주했다. 가족과 살다 상태가 악화돼 ‘시설’에 ‘수용’이 됐던 걸까. 기분장애가 있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혼자 살고 싶었어요. 내 방, 마음에 들어요. 내 집이에요.” 슈페르카씨는 가족 도움 없이 홀로 설 기회를 이곳에서 찾았다.

◇부촌에 세워진 장애인시설=지난 2월 초 방문한 독일 이절론시의 그룹홈 ‘동행주거’는 잘 가꿔진 정원과 파라솔, 시내를 향해 넓게 난 창이 휴양지 호텔처럼 쾌적해 보였다. 언덕 아래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도 일품이었다.

시설 책임자 홀거 야르좀베크씨가 “독일에서 이런 집 짓고 살려면 백만장자여야 한다”며 웃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시설이 들어선 곳은 땅값이 특히 비싼 부촌. 운영 주체인 비영리 민간복지재단 기독교봉사회(디아코니)가 원래 소유한 땅이 아니었다면, 토지를 매입해 장애인시설을 짓는 게 애초 불가능했을 입지였다. 2002년 건립 당시 주민들로부터 눈총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정신장애인시설 운영기관인 ‘네트워크 디아코니’ 슈테판 하케 대표는 “아무도 장애인이어서 싫다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조망권 침해 같은 그럴듯한 이유를 내걸었다”며 “소송이 벌어지면 우리가 백전백승”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수용소처럼 거대한 시설을 짓던 1950∼60년대와 비교하면 이웃 주민과의 갈등은 거의 사라지는 추세다. 건물을 일반 주택처럼 작게 짓고 지역축제 등으로 동네 주민과 교류를 확대하면서 장애인시설은 이제 이웃으로 대접받고 있다.

◇최대한 섞여 살기=장애인 기숙시설은 대부분 이웃집과 5∼6m 간격으로 바짝 붙어 있었다. 외관도 ‘디아코니 기숙사’라는 간판만 없으면 일반 주택과 분간하기 어려웠다. 주거지만 일반인과 섞인 게 아니다. 일상도 최대한 비장애인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조직됐다.

평일인 목요일 오후 2시쯤 찾아가본 붉은 창틀의 4층 기숙사는 텅 비어 있었다. 장애인 1명당 3명의 직원이 배치될 만큼 중증장애인들이 모인 시설. 그래도 거주자 대부분은 작업장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다. 인근의 또 다른 2층 기숙사. 거주자인 경증 정신장애인 10명도 대부분 직장에 출근하고 방을 비운 상태였다. 세 번째로 방문한 5층 기숙사 냉장고에는 이름표가 붙은 개별 음식상자들이 나란히 보관돼 있었다. 스스로 요리하며 독립적으로 생활한다는 뜻. 야간에는 상주 사회복지사도 없어서 이곳이 장애인 그룹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건 각층마다 붙은 긴급전화번호 정도였다.

일을 하기 어려운 장애 노인들에게는 마실 나갈 공간을 만들어줬다. 오후 3시 장애인 주간이용시설 1층 공작실. 반짝이를 붙여 모자를 만드는 할머니와 펀치로 종이에 구멍을 뚫는 할아버지, 방문객을 만날 때마다 악수를 청하는 다운증후군 할머니까지 6∼7명의 장애 노인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회복지사 카타리나 비거스하우스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 4시까지 이곳에서 그림 그리고 만들기 하고 동네 산책도 한다”며 “동네 비장애인 노인들도 방문해 함께 수다를 떠는 마을 노인정”이라고 말했다.

시내에는 ‘콘탁카페’라는 커피숍도 운영되고 있다. 시내 곳곳에 흩어져 혼자 살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이 싼값에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번화가에 자리잡고 있어 일반인과 동선이 섞이도록 했다. 올 초부터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 학생 둘이 이곳에서 실습생으로 일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세상에 나갈 때 위험이 없는 건 아니다. 3년 전 동행주거 거주자 한 명이 시내에 나갔다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사고가 있었다. 야르좀베크씨는 “격리수용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살사건 이후 시설이 따로 조사를 받지는 않았다”며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그래도 사고가 두렵다고 장애인에게 세상에 나갈 기회를 주지 않으면 평생 아무것도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죄의식이 만든 장애인 복지=독일에서 장애인에게는 타 분야에 비해 더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진다. 대표적인 혜택은 부양의무제 면제이다. 장애인의 경우 부모나 자녀가 아무리 부유해도 장애인 본인의 소득이나 재산이 없을 경우 국가로부터 도움 받을 수 있다. 반면 노인수발의 경우 자녀의 소득과 재산을 따져 정부가 자녀에게 부양비에 대한 구상권을 행사한다.

하케 대표는 “히틀러의 나치정권 시절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불임시술을 시행했다. 독일에 장애인 노인 수가 적은 것은 그런 이유”라며 “그때 장애인을 박해한 역사적 죄책감 때문에 독일에서는 장애인 인권에 관한 교육이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이뤄진다. 덕분에 장애인 복지에 관한한 반발이나 이견이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절론(독일)=글·사진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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