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박근혜 대통령의 스토리텔링 기사의 사진

“시작이 엉켜버리면 해피엔딩을 낳지 못한다.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플롯을 짜라”

스토리텔링이란 효과적으로 말하기의 시학(詩學)이다. 현대사회의 분절된 개인과 사회를 소통시키고 때로는 감동까지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라고 일컬어진다. ‘왕이 죽었다. 왕비도 죽었다’라고 한다면 이는 우연한 사실의 나열이다. 그러나 ‘왕이 죽었다. 그 슬픔에 못 이겨 끝내 왕비도 죽었다’라고 한다면 인과관계가 생기고 소통과 전달의 입체성이 시작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스토리텔링이 가장 요청되는 분야는 정치 영역이다. 정치인들은 거의 100%가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의 100%의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놀라운 불일치는 정치에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가. 몇 가지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으로는 ‘손톱 밑 가시’나 ‘신발 속 돌멩이’와 같이 한마디로 당면과제의 절박함을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한 문장으로 과제의 방향을 설명하는 로그 라인(log line)은 스토리텔링의 중심부분이다. 집권기 초반에 이 한마디가 보여준 선언적 효과는 적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 그랜드 플랜(Grand Plan)은 담겨져 있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비극, 즉 진지한 대주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해가는 과정에서 국민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목표가 제시돼야 한다. ‘국정철학’이나 ‘창조경제’와 같은 용어가 나왔지만 이런 모호한 용어는 담론 생산용이지, 주제 그 자체는 아니다.

신발 속 돌멩이를 털어버리는 데 제시했어야 할 국민적 목표는 당연히 ‘국민대통합’이어야 했다. 대선 후 나라가 51대 49로 갈라져서 패배한 쪽의 ‘멘붕’이 구조화되던 때에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는 힘은 당연히 국민대통합에서 이끌어내야 했고, 첫 번째 액션 플랜(Action Plan)은 인사(人事)를 통해 감동이나 설득력을 보여줘야 했다. 이런 호기에 박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뜻밖의 인사를 선보였다. 첫 인사인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에 국민대통합을 뒤집는 독설과 분파주의의 선봉에 선 사람을 선택했다.

어마어마한 실수다. 대통령은 수천 가지의 일을 하지만 특히 초기에는 국민이 원하는 것, 스토리텔링으로 말하자면 ‘이야기가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 그런 필연으로 흘러가야 작품이 살아난다. 왜 시작이 중요한가. 시작은 별 이야기가 없는 것 같지만, 중간과 결말을 이끌어내는 구조력을 갖고 있다. 시작이 독자(이야기)를 배반하면 독자는 작가(작품)를 배반한다. 이것은 인과관계의 100%라고 보면 틀림없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가 역대 정부 최고의 낙마율을 기록하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혼자서 식사하는 것은 은둔자가 비도(秘刀)의 날을 가는 플롯이다. 밀봉 인사를 ‘짠’하고 뜯어 보여주는 것, 홍콩느와르가 보여주는 뒷골목 형님의 플롯이다. 비서실장이 17초짜리로 사과하는 것, 사과하면서 반격을 도모하는 사무라이들의 플롯이다. 과정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면서 가는 민주적 드라마의 세계가 아니라 한 칼로 대역전을 이루겠다는 혁명적 활극의 세계다.

‘국정철학’이란 용어가 역대 정권 말기에 나타났던 특정 단체나 특정 계층 챙겨주기의 코드처럼 퇴색해가고 있다. 아슬아슬한 인사가 계속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과 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자칫하다간 이대로 갈 수 있다. 그래도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하루빨리 잡아줘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 하나의 모델이 있다. 원망과 불평으로 시작하지만 감사와 노래로 끝나는 성경의 시편 13장이다. 무엇이 이런 반전을 가능하게 하는지, 스토리라인을 체계적으로 세워서 독자들의 호감을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설명함으로써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홍보라인이 작동돼야 한다.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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