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그 많은 돈 떡 사먹었나” 기사의 사진

“엄청난 돈을 들여 군대를 양성하고 우수 두뇌를 키워온 까닭은 무엇인가”

“근 20년간 북한보다 수십 배가 넘는 국방비를 쓰고 있다. 그래도 한국 국방력이 북한보다 약하다면 1970년대를 어떻게 견뎌왔겠느냐. 그 많은 돈 우리 군인들이 떡 사먹었느냐. 옛날 국방장관들이 나와서 떠드는데 그 사람들 직무유기한 것 아닌가.”

2006년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격앙된 어조, 격렬한 몸짓으로 한 말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반대하는 보수 측에 대해 그는 그렇게 분노했다. 그런데 요즘 남북관계 돌아가는 것 보면 아무래도 우리 군이 떡을 사먹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가 없다.

“만나서 도대체 왜 그러는지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일 새누리당 수도권 원외 당협위원장과의 오찬에서 한 말이다. “위협에 굴복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했던 박 대통령이 갑작스레 말을 바꾼 배경 혹은 속내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 오랜 기간 북한과 무력대치를 하고 있으면서, 저들의 의도조차 파악 못했다면 군이 떡을 사먹고, 국방장관들이 직무유기 했다고 할 수밖에…. 이렇다 할 대안 없이 똑같은 패턴의 대응을 계속하는 것도 한심하다. 그 엄청난 국방예산, 그 수많은 두뇌들을 가지고 ‘도대체’ 한 일이 뭔가 해서다.

대화 제의가 군사적 협박에 대한 유일한 대응책이라면 돈을 주고 평화를 살 일이지, 군대는 왜 양성하는지. 북한의 위협에 정면으로 맞서라고 하면 ‘냉전주의자’ ‘전쟁주의자’로 몰아세우는데, 그렇다면 북한의 통치 집단은 평화주의자여서 핵무기와 미사일로 협박을 일삼아 한다는 것인가? 협박하는 상대와의 대화가 어떤 것일 수 있는지도 짐작하기 어렵다. 폭압정치의 비용을 대줄 테니까 북한 주민만 괴롭히고 우리는 봐달라고 하자는 것인가?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대화’란 미국과의 흥정이다. 우리로부터는 굴종적 웃음과 돈이 필요할 뿐이다. 그들은 이걸 정신적 물질적 ‘조공’ 쯤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의 협박이 제대로 먹혀든 데 따라 ‘비대칭무기의 과시’를 통한 ‘비대칭적 관계’의 틀이 잡혔다고 확신하게 됐을 듯하다.

미국의 신호에 따라 갑자기 전략을 ‘대응’에서 ‘대화’로 바꾼 것일까? 미국과 우리의 이해는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르다. 그게 일치할 때는 당연히 협력해야 하겠지만 다를 때는 서로의 목표를 각각 추구하면 된다. 그런데 이제까지는 하나에서 열까지 공조해야 한다는 논리 속에서 살아 왔다. 그래서 대북정책에서도 미국이 화를 내면 같이 화내고, 미국이 대화하자면 같이 대화하자고 하는 것인가?

국가안보실을 신설하는 등 국방·안보시스템을 강화한다고 했는데,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을 내용이다. 남북관계와 관련한 기본정신 방향 원칙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있어 미국은 조력자일 뿐, 조국 수호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이것부터 분명히 인식할 일이다.

북한 권력집단은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표현으로 한국과 미국을 을러대서 결국 무릎 꿇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로써 체제위기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통치력 강화의 계기까지 마련했다고 여길 게 틀림없다. 권력이동에 따른 권력내부의 ‘서열 정하기’, ‘질서 잡기’의 시간을 벌었다고 안도하며 핵무기 만능론이 재입증된 것을 자축하는 파티를 열 수도 있겠다.

어쨌든 북한이 일방적으로 벌인 치킨 게임에서 먼저 핸들을 꺾은 측은 우리다. “이제 남한을 공격할 테니 외국인들은 피해라”라는 협박을 견뎌내지 못해, 상대를 치킨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또 놓쳐버렸다. 아마 치킨이 될 뻔했던 저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겉으로는 거드름을 피울 게 뻔하다. 우리 내부의 종북주의자들, 거기에 친북인사들도 덩달아 기세를 올릴 것이다. 정부의 높은 분들, ‘협박과 순응’의 이 불가해한 역할 분담을 언제까지 감수할 것인지 대답 좀 해주시겠습니까?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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