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특허, 새 무역장벽 떠올라… 사활 건 선점 싸움 기사의 사진

표준특허 개발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애플, 삼성전자-에릭슨 등 글로벌기업 간 잇단 특허 분쟁의 핵심은 IT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표준특허 전쟁이다. 표준특허가 산업에 미치는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에 따라 박근혜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 시대의 미래 성장동력을 표준특허 개발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학계와 산업계에서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삼성전자는 스웨덴 통신장비업체 에릭슨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에릭슨이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 법원과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을 제기하자 맞불을 놓은 것이다. 이 소송전의 배경에는 ‘표준특허’가 있다. 앞서 양사는 에릭슨이 보유한 무선통신기술 표준특허 사용료를 두고 갈등을 빚어 왔다. 에릭슨의 점유율이 높은 유럽 롱텀에볼루션(LTE) 장비 시장에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에릭슨이 자사의 표준특허 사용료를 크게 올렸기 때문이다. 에릭슨은 미 법원에 스마트폰, 태블릿PC, TV 등 각종 삼성전자 제품의 미국 내 수입 금지를 요청한 상태다.

◇새로운 무역장벽 ‘표준’=표준특허를 통한 규제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부상하고 있다. 표준은 제품의 형태·치수·구조·품질·생산 및 설계 방법을 비롯해 기술구현 방법 등을 규정한 기준이다. 특정 기술이 표준특허로 지정되면 그 기술을 사용하려는 다른 기업은 특허를 낸 기업에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국제표준은 곧 세계 시장과 연결되기 때문에 각 기업은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할 때 표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해 표준특허를 빌미로 각국 법원에 타사 제품의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 등을 내는 경우도 많다. 세계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국제표준 선점은 필수다.

산업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도 각 분야에서 표준을 선점하며 약진하고 있다. 14일 한국특허정보원 표준특허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제표준화기구(ISO) 등 주요 7개 주요 표준기구에 등록된 표준특허는 4만1487건이다. 이 중 국내 기업이나 연구기관이 보유한 표준특허는 3708건(8.9%)이다. 미국이 1만8670건으로 45%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본은 3384건(8.2%), 핀란드는 3624건(8.7%)을 보유 중이다.

◇중소기업 지원 절실=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내 표준특허가 일부 대기업에 치중해 있어 전체적인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새누리당 김동완 의원은 지난해 10월 특허청 국정감사에서 “국내 표준특허의 대기업 쏠림 현상이 심하다”면서 “공공연구기관과 대학이 연구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2011년 말 정부는 중소기업이 개발한 신기술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면 연구·개발(R&D) 사업 등을 통해 시험장비와 제품 개발, 판로 개척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실적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까지 우리나라가 출원한 국제표준특허 3708건 중 삼성전자가 1783건(48.1%), LG전자가 1485건(40%)을 갖고 있다.

KBK 특허법률사무소 장시호 변리사는 “표준을 개발하고 특허를 취득하는 과정은 시간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필요한 데다 당장의 수익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선뜻 투자하지 못한다. 잠재력 있는 중소기업들을 발굴해 국가 차원에서 표준특허 등록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은 국제 표준화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는 ‘글로벌표준화지원센터’를 연내에 설치하기로 했다. 연구자의 표준화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표준화 실적을 R&D 성과에 반영하고, 연구과제 신청 시 표준화 실적에 가점을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각 연구기관의 표준화 실적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 법 개정도 건의할 계획이다.

◇국제적 활동 펼칠 인력도 확충해야=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보유 여부가 각국의 ‘스포츠 국력’을 나타내듯 표준 분야에서도 주요 표준기구 회원 및 간사 수가 매우 중요한 평가 요소다. ISO, IEC 등 주요 표준기구에서는 해당 국가의 표준기구 정회원 가입 수와 기술위원회 간사 수, 분담금 액수 등으로 국가별 국제 표준화 활동 순위를 평가한다.

우리나라의 ISO 정회원 기업 및 기관 수는 612개로 세계 5위, IEC는 144개로 9위다. 각 기구의 기술위원회 간사 수도 ISO 12위(17명), IEC 9위(5명)로 세계 중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는 ISO에서 8위, IEC에서 7위로 도약하는 게 목표다. 그러려면 ISO와 IEC에서 각각 3명, 1명의 간사를 더 내야 한다. 최형기 기술표준원 국장은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국제표준 선진국을 따라가는 입장에서 벗어나 표준 분야를 이끌어 나가려면 주요 표준기구의 임원 진출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Key Word] 국제표준·표준특허

◇국제표준이란

국가 간 합의를 거쳐 주요 표준기구에 의해 승인된 기준을 말한다. 기술·제품·서비스 분야뿐 아니라 국민생활, 사회안전 등 모든 분야에서 국제표준을 제정하고 범국가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표준특허란

ISO, ITU, ETSI 등 주요 표준기구에서 정한 표준규격을 포함한 특허다. 이 표준을 침해하지 않고는 특정 기술을 구현할 수 없을 때 표준특허를 낼 수 있다. 최근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각국의 국제표준화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표준특허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됐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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