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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황홀] 가장 사랑스런 나무(Loveliest Of Trees)


Loveliest of trees, the cherry now

Is hung with bloom along the bough,

And stands about the woodland ride

Wearing white for Eastertide.//

Now, of my threescore years and ten,

Twenty will not come again,

And take from seventy springs a score,

It only leaves me fifty more.//

And since to look at things in bloom

Fifty springs are little room,

About the woodlands I will go

To see the cherry hung with snow.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런 벚나무가 지금

가지마다 만발한 꽃을 매달고

숲 속 승마길 옆에 늘어서 있네

부활절 맞아 흰 옷을 차려입고//

이제 육십에 열을 더한 내 나이에

스무 살 청춘은 돌아오지 않으리라

칠십의 봄에서 스물을 빼면

남는 것은 쉰 남짓할 뿐//

활짝 핀 꽃을 구경하기엔

쉰 봄날도 덧없는 것

나 숲길로 어서 가야겠네

눈꽃처럼 피어있는 벚꽃 보러 가야겠네.

알프레드 하우스먼(A E Housman 1859∼1936)


그렇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다.

우리나라 최고의 가락을 자랑하는 송강(松江) 정철 시인도 노년과 죽음의 안타까움을 한탄하여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지금 벚꽃은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서 절정의 색으로 유혹하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이팔청춘을 대관절 왜 그리워한단 말인가.

영국 케임브리지대 최고의 라틴문학 교수였던 하우스먼의 충고대로 지금 당장 벚꽃 마중하러 갈 일이다.

임순만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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