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가게’ 지도가 있다고?] “혼자 알기 아까운 동네가게 많이 알려져야 좋잖아요” 기사의 사진

서울 성산동 주택가의 카페 ‘이로운’에 가면 콩물과 콩크림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다. 주인 노형근씨가 친환경 재배된 대두(大豆)를 직접 삶아 요리한다. 주방에선 플라스틱 용기를 찾아볼 수 없고 설거지도 친환경 세제로 한다. 계산대 앞 유리병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넣으면 생일에 맞춰 ‘에코 도자기컵’을 준다. 일회용 종이컵을 줄이자는 뜻을 담아 손님들에게 건네는 생일선물이다.

충북 청주시 봉명동 햄버거집 ‘올리’의 햄버거에는 햄이 없다. 두부를 만들 때 나오는 비지로 패티를 만들어 유기농 채소와 함께 우리밀 빵에 끼운다. 충북에서 생산된 재료만 쓰는 로컬푸드이자 유기농 웰빙음식인 ‘올리버거’의 값은 겨우 2300원. 패스트푸드의 홍수 속에서 아이들을 위한 먹거리로 개발해 6년째 이 동네를 지키고 있다.

술집과 옷가게가 즐비한 서울 홍익대 앞에 2년 전 ‘땡스북스’란 작은 서점이 생겼다. 1994년 5600개가 넘던 서점이 1500개로 줄어든 지금 ‘동네서점’의 롤모델이 되겠다며 문을 열더니 강남 가로수길에 2호점까지 냈다. ‘좋아하는 책을 편안한 공간에서 고르는 즐거움’을 위해 책만 빼곡한 동네책방의 외형을 벗고 여유로운 인테리어와 커피 향, 잔잔한 음악을 입었다.

스타벅스와 카페베네의 틈새에서, 맥도날드와 롯데리아가 점령한 학교 앞에서, 교보문고와 인터넷서점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착한가게’들. 정치권에서 이런 가게를 위한다며 경제민주화를 외쳐대고 있지만 그 온기가 언제 저 골목까지 내려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저들에겐 정치인의 말보다 소비자의 발걸음이 절실하다.

신혜숙(41·여)씨는 그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고 지도를 만들고 있다. 전국의 착한가게를 발굴해 위치 정보와 상세한 소개를 온라인 지도에 담는다. 스마트폰만 켜면 내 주변의 대형 커피전문점 위치가 고스란히 나오는데, 동네가게들이 그런 골리앗과 경쟁하려면 이런 지도 하나쯤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홀로 뛰어들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신씨의 웹사이트(www.bwyb.net) ‘바이왓유빌리브(Buy What You Believe)’에 가면 우리나라 지도 위에 수많은 위치마크가 빼곡히 박혀 있다. 동네빵집, 친환경 반찬가게, 공정무역 커피, 커뮤니티 카페, 다문화 레스토랑, 의료생협 등 카테고리별로 ‘착한가게 지도’가 제공되고 각 가게의 사진과 소개글이 실려 있다.

빵집 지도를 클릭하면 맨 먼저 나오는 ‘김진환 베이커리’. 서울 동교동에서 우유식빵과 소보로빵만 팔며 18년째 운영하고 있다. 수익금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서울 서강대 앞 공정무역 커피점 ‘트립티’, 장애인과 노인들을 채용해 떡을 만드는 서울 도곡동 떡카페 ‘떡찌니’…. 6개월 전 500개였던 가게 수는 이제 2000개가 넘는다.

신씨는 롯데그룹의 온라인 종합쇼핑몰 롯데닷컴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다. 2001년에 옮긴 IT기업은 대기업의 온라인 쇼핑몰을 구축해주는 회사였다. 지난해 4월 사표를 낸 뒤 벤처 창업을 준비하다 이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비자를 대기업 쇼핑몰에 불러 모으는 일이 직업이었다가 거꾸로 동네가게를 찾아다니게 하는 일에 나선 것이다.

“제가 경기도 분당에서 혼자 살거든요. 경제민주화 얘기가 나오기에 나름대로 착한 소비를 해보려고 찾아다녔는데 너무 불편했어요. 인터넷을 뒤져봐도 정보가 다 흩어져 있고, 뭔가 사야할 때 매번 검색하기도 어려워서 커뮤니티 맵을 만들어보자고 한 거죠.”

그는 미국 비영리단체 커뮤니티맵핑센터의 임완수 소장의 강연을 들으면서 ‘착한가게 지도’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화장실 찾기 힘들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화장실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임 소장은 구글맵을 활용해 ‘뉴욕의 화장실’이란 온라인 지도 사이트를 만들었다. 시민들이 누구나 거리에서 발견한 공중화장실 위치를 지도에 표시할 수 있게 했더니 한 달 만에 뉴욕 지도가 빼곡해졌다.

바이왓유빌리브 지도 역시 시민들의 제보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누군가 자기 동네 착한가게를 알려주면 신씨는 인터넷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그 가게에 가봤던 이들의 평을 수집하고, 때로는 직접 방문해 ‘착함’을 확인한 뒤 지도에 수록한다. 제보가 없을 땐 인터넷 서핑으로 직접 발굴하고 있다.

바이왓유빌리브는 지난해 서울시 사회적 경제 아이디어 대회에서 1024개 지원자 중 42개 우수아이디어로 선정됐다.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할 일”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근엔 함께 할 이들을 모집해 김수원, 남지원씨가 합류했다. 이제 착한가게 지도를 스마트폰 앱으로 만들려 한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스타벅스 대신 공정무역 카페를 찾아갈 수 있도록. 신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줄이는 것도 그 난리를 쳤잖아요. 대기업 규제하고 제도 바꾸는 것보다 소비자가 바뀌는 게 어쩌면 경제민주화를 더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이 지도는 경제민주화의 풀뿌리 버전쯤 되겠죠.”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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