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김혜림] ‘여성인재’ 등용이라고? 기사의 사진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한다. 그때 별명이 ‘매 맞는 반장’이었다. 당시 담임선생님께선 자리를 자주 비우셨다. 아이들을 ‘조용히 자습시키라’는 명령을 남긴 채. 선생님이 안 계시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조용할 리가 있나! ‘차렷’ ‘경례’ 구령도 뒤쪽에는 들리지 않을 만큼 목소리가 작았던, 소심한 반장은 안절부절못할 뿐이었다. 교실에 돌아오신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조용히 자습시키지 못한 반장의 손바닥을 때리시곤 했다.

지금도 목소리는 여전히 작고, 말보다는 글이 편한 기자는 얼마 전 장관 인사청문회 때 ‘너무 쫄아서 머리가 하얗게’ 돼서 ‘모른다’를 연발하며 실없는 웃음을 흘리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내린 해수부 폐지 방침에 맞서 존치 필요성을 조리 있게 역설,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에 오른 ‘모래밭에서 찾아낸 진주’이니 실력은 있을 텐데 얼마나 당황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도 반대한 윤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박 대통령이 그 이유를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아닌 ‘여성인재’ 등용이라고 했을 때 머리가 쭈뼛 섰다. 잇따른 인사 실패, 그중에서도 ‘꽃’이란 불명예를 차지한 윤 장관의 모자란 부분을 덮어주기 위해 ‘여성’이란 변명을 갖다 붙이다니….

그동안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을 받아 왔다. 신입사원 모집요강에 ‘군필자(軍畢者)에 한함’이라는 말뚝이 박혀 있어 여성들은 이력서조차 내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불과 30여 년 전 얘기다. 그때와 비교하면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하지만 성차별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국내외의 신뢰도 높은 기관에서 내놓는 많은 통계 숫자들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말 내놓은 보고서에서 한국의 남녀 간 임금 격차는 39%로, 관련 통계가 집계되는 28개 회원국 중 제일 컸다. 남녀 소득 격차는 특히 고소득자들 사이에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들이 고위직으로 승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으로, 아직도 유리천장이 견고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호주제 폐지 이후 일부 남성들은 남녀평등을 넘어서 역차별을 받는 시대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남녀평등에 대한 착시현상은 여성대통령의 당선으로 더 강화될 것이다. ‘미국에도 없는 여성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 나왔는데, 여성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는 볼멘소리가 벌써 들리고 있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더니 그런 착시 현상에 기름을 붓는 말이나 하다니….

윤 장관이 변신했다는 소식이다. 청문회 때 갑갑해보이던 감색 투피스를 벗어던지고 밝은 파스텔톤의 투피스를 입었다. 붉은색 립스틱을 지우고 은은하고 세련된 화장으로 바꿨다. 말투도 달라졌단다. 아마도 ‘쫄았던’ 심장이 제 크기를 찾고, ‘하얘졌던’ 머리도 제 색으로 돌아왔나 보다. 이제 ‘수첩’에 자리 잡았던 ‘진주’로서 해수부를 제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쪼록 그렇게 되길 바라면서 한 가지 당부하고 싶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장관이 됐으니 각료회의 때 ‘여성’임을 명심하고 임하라는 것이다. 모든 정책 결정과정에서 남녀 성차별의 개선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각종 제도나 정책이 특정 성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지, 성역할 고정 관념이 개입되어 있는지 아닌지 검토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주길 바란다.

산업부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