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된 조국에 과학강국의 꿈을 심다… 한국 과학소설 선구자 한낙원 소설선집 출간 기사의 사진

“세 훈련생은 무서운 속력으로 치솟고 있는 X·50호 안에서 자동의자침대에 누운 채 지긋이 어려움을 참았다. 그래도 토할 것 같고 현기증이 일어났다. 이것이 우주 뱃멀미란 것이다. 그들은 의사가 지시한 대로 배에다 힘을 주었다.”

한국 과학소설의 선구자 한낙원(1924∼2007)의 1959년 데뷔작인 장편 ‘잃어버린 소년’의 한 대목이다. 당시 ‘연합신문’에 연재한 것으로,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기 바빴던 1950년대 말 청소년들에게 과학강국에 대한 기대를 불어넣었던 작품이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한낙원과학소설선집’(현대문학)이 출간됐다. 그의 과학소설들은 1950년대 말부터 학생잡지 ‘학원’과 ‘학생과학’, 어린이잡지 ‘새벗’, 어린이신문 ‘소년동아일보’ ‘소년한국일보’ 등에 연재되며 인기를 끌었다. “어떤 무더운 여름날이었어요. 나는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바람결에 길을 잃고 그리스 데모크리토스란 학자의 콧구멍으로 기어 들어갔어요. 그분은 콧날이 우뚝 솟고 눈이 이상하게 빛나는 의젓한 분이었어요. 나는 그분이 좋아졌어요.”(‘길 잃은 애톰’ 도입부)

실재하는 것은 원자와 공간뿐이라는 ‘원자설’을 주창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원자의 존재를 발견하는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로 풀어낸 단편이다. 선집엔 장편 ‘금성 탐험대’의 일부와 ‘별들 최후의 날’, 중단편 ‘애톰과 꿀벌’ ‘사라진 행글라이더’ 등이 실렸다. 이 가운데 ‘애톰과 꿀벌’ ‘알갱이의 기적’ 등은 역시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를 의인화해 입자의 존재와 그것이 일으키는 작용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어린이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모험소설과 추리소설을 즐겨 채용했으며 어린이들이 과학과 기술이 이루어낸 세계를 추체험하는 데 중점을 주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딸 애경(56·한국기술교육대 교수)씨는 “아버지는 시대를 앞서가신 분이고 스스로 공부해서 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분”이라며 “1980년대에 이미 패러글라이딩과 사이클링, 오토바이를 즐기셨고 수영에 암벽등산까지 하셨는데 지금 다 유행하는 것들”이라고 회상했다.

평남 용강 태생인 한낙원은 평양 소재 숭인상업학교 출신으로, 일본 유학을 갔다가 1945년부터 평양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평양으로 진격한 국군이 평양방송국을 재건할 때 방송부장을 맡았다. 1950년 12월 월남한 그는 1952∼54년 유엔군 심리작전처 방송부장을 거쳐 방송작가로 문필 생활을 시작했고 주로 잡지와 신문 연재를 통해 과학소설을 발표하면서 한국근현대문학사에 과학소설이라는 장르를 정착시킨 선구자이다.

선집을 엮은 김이구 문학평론가는 “한낙원의 등장으로 비로소 한국에서 과학소설가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며 “방송국에서 일하며 현대과학기술을 접하고 유엔군 심리작전처 등에서 진보된 서양문물을 가까이 느낀 경험은 아마도 한낙원이 조국의 과학 발전을 염원하며 과학소설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촉매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한낙원의 데뷔작 ‘잃어버린 소년’의 발표 시기에 관해 1953년이란 주장과 1962년이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김이구 평론가는 “1950년대 ‘연합신문’의 마이크로필름을 모두 뒤진 끝에 1959년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낙원은 방송극도 다수 집필했다. KBS와 CBS 등에서 ‘자유인’ ‘달에서 들리는 소리’ ‘우주 소년 이카루스’ ‘100년 후의 월세계’ ‘화성에서 온 사나이’를 각색하거나 창작한 방송극이 전파를 탔다. 한편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을 마지막으로 출판사 현대문학의 ‘작고문인선집’ 시리즈는 1차분의 막을 내린다. 지난 5년간 ‘작고문인선집’ 시리즈는 총 52권을 펴내며 박봉우 백신애 안회남 윤백남 등 학계와 문단에서 잊힐 뻔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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