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쓴 일기 갈피마다 父情 오롯이 기사의 사진

아버지의 일기장/박일호 일기·박재동 엮음/돌베개

아버지는 ‘만화방 주인’이었다. 울산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인해 교단을 떠나 부산 전포동에 셋방을 얻은 뒤 연탄배달, 풀빵장사, 팥빙수 장사를 하다가 집주인이 하던 만화방을 인수한 것이다. 큰아들은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었다. “재동이가 진해 군항제 미술실기대회에 갔다가 어젯밤 늦게 돌아왔다. 몹시 고단한 모양. 제 어머니가 깨우는 소리가 여러 번 났다. 떠날 때 여비가 흡족하지 못해 좀 시무룩하게 보여 돌아올 때까지 마음이 불안했다.”(1971년 4월 6일 일기 중)

박재동(61) 화백이 아버지(박일호)의 일기를 모아 책을 펴냈다. 아버지는 1971년 4월 5일부터 작고하기 20여 일 전인 1989년 5월 27일까지 꼼꼼하게 일기를 썼다. 20년 가까이 쓴 일기가 수십 권에 이른다. “오늘 밤도 아내는 마지막 청소를 하다가 심한 두통(수면 부족)으로 쓰러졌다. 17년간의 고된 생활이 급기야 최후의 저력까지 앗아갔다.”(1976년 6월 24일 일기 중)

아버지의 일기를 올해 초 어머니로부터 건네받은 박 화백은 아버지의 일기 밑에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글을 덧붙였다.

“아, 어머니, 아버지! 같이 살면서도 어머니가 쓰러지신 걸 몰랐고 아버지의 결의를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저도 둔하지만 두 분은 어쩌면 그렇게 내색도 안 하시고 늘 제게 웃는 모습만 보여주셨습니까.”

아들은 아버지의 일기를 읽다가 눈물을 찍어낸다.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러나 서민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중략) 앞집에서 이삿짐을 나르는 광경을 보며 10여 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오던 날이 떠올랐다. 남의 집 셋방살이의 설움이 어떤가를 또 한 번 생각한다.”(1977년 4월 23일 일기 중)

이 대목에 대한 아들의 기억 또한 생생하다. “우리 집이 만홧가게를 하면서 손님이 끓자, 주인들은 자기들이 한다고 두 번이나 우리를 쫓아냈지요. 그때는 동네에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어서 아침마다 줄을 서야 했는데, 우리 집에 화장실이 생기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아버지의 만화방이 없었다면 지금의 박 화백도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처럼 꾸준히 일기를 쓴다는 박 화백은 다음 달 30일까지 출판사 돌베개 사옥 1층 갤러리 ‘행간과 여백’에서 아버지의 일기장과 부자 간 주고받았던 편지 등을 전시한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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