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집 이야기 기사의 사진

“수고한 가족들이 한 상에 둘러앉은 즐거움…가정은 천국의 작은 모델이다”

어느 부부가 나이 많은 숙모를 모시고 살게 되었다. 부부는 낯선 곳으로 이주하게 될 숙모가 여생을 제대로 적응하며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숙모를 방문해 세밀하게 조사한 후 방 하나를 개조해 숙모가 살고 있는 방과 똑같이 만들어 놓았다. 침대나 가구는 물론 벽지와 벽에 걸려있는 물건들까지 똑같이 구성했다. 숙모가 편안하게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한 것은 물론이다.

평소 즐겨 보는 소책자 ‘오늘의 양식’ 지난해 5월호에 나온 내용이다. 필자인 미국의 신학자 데이비드 맥카슬랜드는 짧은 글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천국은 모든 종족과 모든 나라로부터 온 교우들이 가족처럼 모이는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집 안에 당신만을 위한 방을 준비하고 계신다. 당신이 천국에 도착하여 예수께서 문을 열어주실 때, 당신은 집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영성 깊은 글이다. 세상의 삶은 더없이 메마르고 힘들더라도 그 너머에 편히 쉴 거처가 있고, 마침내 그곳에 당도했을 때 어서 오라고 문을 열어 반겨주는 분이 있다는 것. 집을 떠나야 하는 우주의 나그네들이 이 문장을 읽고 받는 위안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얼마 전 80대 후반의 친척 아주머니께서 쓰러지셨다. 자식들이 부랴부랴 지방의료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했더니 다행히 며칠 만에 의식이 돌아왔고 식사도 손수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자식들이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있다. 아주머니가 병원에서 나오는 장조림이며 쇠고기 반찬을 드실 줄 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아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쇠고기 반찬을 드실 줄 안다는 것을 60년 만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내력인 즉 이렇다. 대가족의 맏며느리였던 아주머니는 시어머니가 90무렵에 돌아가실 때에야 광의 열쇠를 물려받았다. 빈한했지만 도리가 반듯하고 인심이 넉넉해 찾아오는 손님이 그치지 않았다. 평균 이틀에 한 손님은 드는 살림이었다. 그럼에도 아주머니는 찾아온 누구 하나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다. 8남매나 되는 자식들도 모두 성공적으로 키웠다.

그런 형편이었기에 아주머니는 지금껏 고기 한 점, 사이다 한 모금 드시지 않고 주위의 누군가에게 양보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이제 노쇠하여 입원하고 나서야 병원 식사에 나오는 소고기 반찬을 자식들이 보는 가운데 드신 것이었다. 아주머니의 집을 찾아온 지금까지의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의 이런 희생과 정성이 미더워 철마다 발걸음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어두워져가는 벌판 위에 집이 한 채 서 있다. 그 집에 반짝하고 불이 켜진다. 그 불은 처음에는 은근하게 빛날 뿐이다. 초저녁 하늘에 샛별이 돋듯 넓은 벌판 어딘가에 불이 하나 들어온 것이다. 밤이 깊어진다. 살포시 빛났던 불빛은 어느새 멀리까지 반짝거린다. 밤이 늦게 길을 걸어본 사람은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 불빛은 행려(行旅)의 동반과 같은 것, 있어야 할 곳에 있어주는 가족과 같은 것이다. 외딴집 주인이 늦게까지 불을 끄지 않는 이유다.

전에 몇 달간 혼자 산 적이 있다. 집사람과 아이들이 없는 적적한 공간에서 거실에 작은 등을 켜놓고 어둑어둑하게 살았다. 늦게 퇴근하여 일찍 출근하는 단지 몇 시간이 집안에 있는 시간의 전부였다. 그런 어느 날 밤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런 노래를 들었다.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혼자서 밤늦게 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가족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를.

가정은 각자가 가꿔가는 천국의 작은 모델이라고 한다. 대부분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이고, 그 과정에서 발휘되어야 하는 모든 힘의 원천이다. 내 집이 소중하기에 바로 이웃의 집 또한 그렇다. 마을이 그렇고 나라도 그렇다. 5월의 초록빛 사이로 남북의 전쟁 분위기는 지나가는가.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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