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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황홀] 나의 어머니 (Of My Mother)


Now she was gone out, they left her in the earth

Flowers grow, butterflies overhead.

She, the light one, scarcely dented the earth

How much pain was needed till she became so light!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1898∼1956)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무덤 위로 나비가 날아간다

가벼운 그녀는 땅을 짓누르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지불했는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등의 시를 통해 세계적 명성을 획득한,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에야 해금된 독일 시인이며 희곡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한 제지공장 직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평생 편안한 작가가 아니길 희망했고 죽어서도 그렇게 편안히 읽혀지길 원치 않았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 1941년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그곳에 불어 닥친 매카시즘에 환멸을 느끼고 1947년 동베를린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스탈린주의가 지배하던 그곳에서의 삶 역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58세를 일기로 망명지 동베를린에서 세상을 뜨면서 브레히트는 철학자 헤겔의 묘 옆에 묻히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브레히트의 대표적인 시들을 모아놓은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폭력에 대한 고발과 내면의 고백을 담고 있다. 오늘날에도 그의 시가 쟁쟁하게 울리는 것은 야만의 시대에서도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그것을 증언해야 한다는 진정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수록된 ‘나의 어머니’는 아름답지만 평이한 시는 아니다. 암으로 떠난 어머니의 고통 위에 브레히트의 고통이 겹친다. 누구도 짓누르지 않는 죽음이 되기까지 사람들은 얼마나 큰 아픔을 견뎌야 하는 것일까. 다만 시각의 차이는 있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모친의 무덤 위로 날아가는 나비를 통해 브레히트는 육신의 날지 못함을 말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 시는 충분히 날아가고 있다. 비신앙도 신앙처럼 환치(換置)되는 시다.

임순만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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