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한승주] 무한도전, 8년의 기적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자처하는 남자 일곱 명, 그것도 4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아저씨’들이 모였다. 리더이자 잔소리꾼 유재석, ‘하찮은 형’ 박명수, 눈치 없는 정준하, 담석으로 고생 중인 정형돈, 동갑내기 라이벌 하하와 노홍철, 재미없는 길까지. 혼자서는 내세울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이 한데 모이면 천하무적이다. MBC 대표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얘기다. 무명도 여기에 얼굴 한 번 비치면 단박에 유명인사가 되고, 연말이면 이들을 모델로 한 달력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무한도전’이 최근 8년을 맞았다. 조금이라도 시청률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폐지되는 프로그램 수난시대, 8년은 대단한 성과다. 무한도전의 롱런 비결은 무엇일까.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율적인 형식, 일곱 명이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시너지, 될 때까지 잠재력을 믿고 기다려주는 의리가 아닐까. 우리가 무한도전에서 배워야 할 것이기도 하다.

우선 짜여진 대본과 형식 없는 자율성이 빛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매주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다른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KBS)이나 ‘런닝맨’(SBS)과는 다른 점이다. ‘1박2일’은 늘 어디론가 떠나고, ‘런닝맨’은 이름표를 뜯는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그런 게 없다. 다음 주에 무얼 할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종종 예능의 한계를 스스로 부순다. 독도문제를 핵심적으로 짚어낸 ‘스피드 특집’이나 뮤지컬을 접목해 정리해고 문제를 다룬 ‘무한상사 특집’이 그렇다.

우리 삶은 대체로 틀에 박혀 있다. 학교나 회사를 기반으로 한 삶은 비슷하고, 그래서 늘 새로운 무엇인가를 꿈꾼다. 이런 현대인에게 무한도전의 정형화되지 않은 형식은 반가운 도전이다.

둘째, 개개인은 미약하나 일곱 명이 모일 때의 시너지는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혼자서는 도저히 무엇 하나 이룰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이 함께 하면 놀라운 성과를 낸다. 조정 경기가 그랬고, 레슬링이나 에어로빅이 그랬다. 뛰어난 한 명 혼자라면 당장은 빠를지 몰라도 이내 지치기 쉽다. 무한도전은 같이 하면 속도는 느릴지라도 오래 길게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의 도전이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실패할지라도 그 과정을 다 아는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우리 삶도 비슷하다. 보통 사람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면 뛰어난 한 명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불가능해보였던 것도 이뤄진다. 혼자는 외롭지만 여럿은 든든하다.

무한도전의 진정한 힘이자 미덕은 ‘기다려줌’인 것 같다. 안 웃기고 적응 못하는 멤버도 있었다. 8년 동안 이들을 하차시키라는 시청자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제작진과 멤버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정형돈이 먼저 날개를 달았다. 정준하는 또 어떤가. 최근 무한상사 특집은 정극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길도 마찬가지다. 특유의 ‘재미없음’을 아예 캐릭터로 만들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현실이라면 이렇게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까. 동료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격려해줄 수 있을까. 실상은 그 반대인 무한경쟁 사회다. 그래서 무한도전이 부럽다. 일곱 명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거리고, 틈만 나면 공격하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그들의 무한이기주의 깊은 곳에서는 의리가 바탕이 돼 있다는 것을.

무한도전 8년, 이들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지금까지 이뤄온 것은 결코 적지 않다. 앞으로도 이들을 계속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한승주 문화생활부 차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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