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청와대 이런 곳이던가요? 기사의 사진

“들메끈을 조여매지 않으면 발걸음을 소신껏 내디딜 수 없다. 5년 임기는 짧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큰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양국 관계를 격상시키고 이를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에 담았다는 점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명명된 박 대통령 자신의 대북정책에 대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적극적인 이해와 지지를 얻어낸 것 또한 큰 성과로 꼽힌다. 대북관계에서 주도력 발휘의 기반이 마련된 셈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로써 새 정부의 국정 견인력이 크게 강화되리라는 희망에 부풀었을 것이다. 정치는 어떤 면에서는 기회 포착의 기술, 풍향 편승의 기술이다. 방미 성과가 제갈량의 ‘동남풍’ 역할을 해줘서 여론의 지지율이 급상승해 주기를 기대했을 법하다.

그런데 만사휴의! 대통령 일행을 앞질러 달려온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이 신문지면, TV 화면을 뒤덮어버렸다. 일을 그르치기로 작정한다고 해도 이처럼 철저히 망쳐놓기는 어렵다. 그래서 묻게 된다.

“청와대가 어떤 곳이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요?”

외국에 대통령을 수행하러 간 대변인이라면 잠 속에서까지도 조심 또 조심할 일이었다. 그런데 시차를 극복한다거나 인턴을 격려한다는 핑계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성추행’ 파문은 이 과정에서 빚어졌다. 이렇게 스스로 긴장을 풀고 있었을진대 무슨 사고인들 안 생겼겠는가.

청와대의 대응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남기 홍보수석이 “재수 없게 됐다”며 귀국을 지시했다고 윤 전 대변인은 주장했다. 이 수석은 부인했지만 정말 그런 말을 했다면 기가 막힐 일이다. 성추행 말고 재수 없었던 게 문제라는 뜻이 되지 않는가.

사건 보고를 받았으면서 윤 전 대변인에게 시간이 없으니 선임행정관 등과 의논하라고 했다는 이 수석의 해명도 엉뚱하다. 무슨 더 큰일이 있었어야 자신이 직접 윤 전 대변인과 대화를 했으리라는 것일까? 대통령에게 보고한 시점이 사건 인지 24시간 후였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청와대 차원에서는 여론의 흐름에 편승, ‘윤창중 개인의 성추행’으로 방치해 두려 한 인상이 짙다.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이 확인됐든, 의혹 수준이었든 일단은 당사자와 이 홍보수석 등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초지종을 따져봤어야 했다. 그런데 민정수석실 조사가 전부였던 모양이다.

윤 전 대변인으로서는 청와대 홍보수석실조차 자신을 밀어내고 문을 닫아걸어 버린 것이 섭섭하고 막막했을 수 있다(물론 그의 변명이 사실일 경우이지만). 그의 눈에 여론과 언론은 사자우리로 비쳤을 터다. 그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고는 구경꾼인 양하는 관계자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기자회견으로 표출됐겠다는 추측도 가능하겠다.

아직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고, 또 개인의 도덕성에 관련된 문제이기는 하지만 청와대의 ‘내치고 문 닫아 걸기’ 식 대응은 정말이지 실망스럽다. 청와대 안에 언제부터 이처럼 철저한 업무 및 책임의 칸막이 체제가 이뤄져 있었던 것인지 그게 궁금하다.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흙탕물로 뒤덮어버린 사건이다. 그게 누구의 어떤 행위에서 비롯됐든 청와대 비서실 공동의 과오로 인식,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옳은 처사다. 그런데 ‘무관(無關)’을 주장하는 목소리만 요란스럽다. 이래서야 천하의 인재가 모인 국가 권력의 핵심부라고 하기에 낯간지럽지 않은가.

이런 시스템, 이런 인적 구성으로는 ‘박 대통령의 좌절’을 초래할 것 같아 벌써부터 조마조마해진다. 이번 사건이 청와대의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인적 쇄신을 단행하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들메끈을 조여 매지 않으면 발걸음을 힘차게 소신껏 내디딜 수 없다. 5년 임기는 짧다.

<추신> 정부의 높은 분들! “군자는 내면의 깊은 곳을 조심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열 눈이 보는 바,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 그 삼엄함이여!” 이런 말도 있고요. ‘대학(大學)’의 가르침인데요, 이런 경구 정도는 귀담아들어 두셔도 좋겠습니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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