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정진영] 윤창중씨의 반말 격려 기사의 사진

“앞으로 잘해. 미국에서 열심히 살고 성공해.” 성추행 추문으로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단번에 날려버린 전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씨가 피해 당사자인 재미동포 여성 인턴에게 했다는 말이다. 자신은 엉덩이를 만진 것이 아니라 허리를 툭 치며 이런 말로 그녀를 격려했다는 것이다. 윤씨는 지난 11일 밤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이 대목을 유난히 강조했다. 기자회견 처음 5분 정도 인턴이 업무에 서툴러 여러 차례 꾸짖었다고 말한 데 이어 허리를 “툭 한 차례 치면서”라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느린 템포로 두 번 반복한 후 “잘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신체적 접촉이 있기는 했으나 ‘추행’의 의도가 아니라 ‘덕담’을 위한 선의의 행동이었다는 데 초점을 둔 해명이었다.

쉽게 반말하는 갑의 우월의식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이 오히려 “정말 여성 인턴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 반말 때문이다. 윤씨는 업무상 알게 된 지 하루 이틀밖에 안 되는 여성 인턴에게 서슴없이 반말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상대방을 잘 알든 모르든, 그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계급이 낮은 사람에게는 반말이 당연하다는 태도다. 요즘은 “커피 두 잔 나오셨습니다”라는 비정상적인 사물존칭까지 쓸 정도로 말에 관한 한 ‘과공(過恭)’의 시대다. 대통령을 수행해 온 ‘갑’이니까 허드렛일을 하기 위해 배치된 ‘을’에게 이 정도 반말은 무방하다는 것이 그의 의식 수준인 듯하다. 이런 관점이라면 우월적 지위를 지닌 ‘갑’이 ‘을’에게 상식을 뛰어넘는 짓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말에는 말하는 사람의 성정이 그대로 반영된다. 따뜻한 말에는 배려가 풍겨나고 격한 말은 다툼을 부른다. 진정으로 인턴 여성을 격려하려 했다면 위압적인 반말보다는 부드럽고 예의 갖춘 어투였어야 했다.

말로 인해 구설에 오르거나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자주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남양유업 사태도 ‘물량 밀어내기’라는 본사와 대리점 간의 계약 관계에 따른 본질보다 본사 직원의 폭언이라는 돌출적 사안이 큰불로 번진 경우다. 본사 직원이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붓는 내용이 SNS로 퍼지면서 일파만파로 확산된 것이다.

한국교회도 언어예절 신경써야

말에 관한 한 한국교회도 살펴봐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설교 중 습관적으로 성도들에게 반말을 하는 목회자가 있는가 하면 거친 말투로 집회를 인도하는 부흥사도 있다. 설교 중에 성희롱성 발언을 하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경우도 있다. 회사 한 후배는 30대 기자인 자신에게 처음 만나는 교단 관계자가 대뜸 반말을 해 당혹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성도들 간에도 마찬가지다. 부드럽고 따뜻한 말로 교제를 나누는 것이 당연함에도 격한 언사로 서로를 비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필자 역시 남을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을 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말처럼 쉽게 잘 안 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마음가짐이 몸에 익지 않은 탓이라고 자책한다. 이른바 ‘비폭력 대화법’이라도 받아야 할까보다.

‘칼에는 두 개의 날이 있지만 입에는 백 개의 날이 있다’고 했다. 성경에서도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잠 10:11)고 했다. 윤씨의 ‘반말 격려’로 다시 한번 말의 엄중함을 생각해봤다.

정진영 종교국 부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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