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남북 해빙의 새 언어는 없는가 기사의 사진

“주변국의 이해관계는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기술적인 대북 관여정책 있어야”

일명 ‘박연폭포’라고도 하는 개성난봉가에는 ‘박연폭포가 제 아무리 깊다 해도 우리 양인의 정만 못하리라’는 가사가 나온다. 사랑노래인 난봉가는 “삼십장(三十丈) 단애(斷崖)에서 비류가 직하하니 박연이 되어서 범사정을 감도네”라는 가사로 이어진다. 서로 까다롭고 불편하더라도 정치적 지배를 받지 않던 시절의 개성공단은 남북의 정이 박연폭포보다 깊어보이던 남북화해의 상징 장소였다. 삼십장(삼백척) 단애에서 쏟아지는 물이 범사정을 감돈다는 노랫말은 남북의 미래상으로 보기에 족했다.

그 개성공단이 고사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설비노후화로 공단 가동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일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북한에 있다. 정·경 분리 원칙을 무시하고 공단폐기를 무기화한 북한은 아직도 큰소리치지만 내심 통탄하지 않기 어려울 것이다. 개성은 고려 수도로서의 자존감을 지닌 도시이자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개성상인의 피가 흐르는 상도(商都)다. 북한 사람들은 나진·선봉에 투자한 중국보다 남한이 훨씬 거래하기 좋고 말도 잘 통하고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공단에서 일하던 5만3000명의 근로자, 가족을 포함하면 20만명에 이르는 개성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 완제품과 원·부자재의 반출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제의한 우리 정부는 19일 통일부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북한은 도발적 행동을 멈추고 하루빨리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재차 촉구했다. 이에 반해 북한은 이달 초 남측 잔류 인원들이 개성공단에서 전부 철수할 때 관계자들의 출입과 입주기업들의 방문 및 물자반출을 허용할 의사를 표명했다고 주장한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물자반출과 관련한 날짜까지 제시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물자반출을 위한 협의 의사를 타진했다는 것은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에 당장 만남이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북이 기 싸움을 벌이며 같은 말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면서 매듭을 풀지 못한다. 북한은 남한의 기 싸움 상대가 아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2 북한 주요통계 지표’를 보면 1인당 소득은 남한이 2492만원, 북한은 133만원으로 남한이 북한의 18배가 넘는다. 무역총액은 1조 달러 대 63억 달러로 171배에 이른다. 이쯤 되면 대북문제의 새로운 틀을 만들지 못하는 남한의 창의력 부족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도발을 상습적인 전략으로 삼는 북한을 상대하는 방법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스스로 대화창구에 나올 때까지 원칙을 세워놓고 준수하기보다는 미묘하고도 기술적인 대북 관여정책이 필요하다. 북한은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달라지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대북 접근 행보에서 보듯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을 통해 북한과 모종의 대화를 시도할 경우 한국만 대북 강경책에 매달리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한 가지 원칙만을 준수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대북 문제의 종합 정책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듭 “어느 나라가 북한과 거래하려 하겠느냐”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전략적인 언급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동서화해정책을 추구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 소련과 동유럽 개혁을 주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평화’로 해결해내는 능력을 보여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지구촌 분쟁 해결사로 일하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한반도 문제의 최고·최종 해법자여야 하는 박 대통령은 이런 세기적인 평화추구의 지도자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남북 해빙의 새로운 언어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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