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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발견] (19) 플라스틱 쌀바가지

[디자인의 발견] (19) 플라스틱 쌀바가지 기사의 사진

‘뿌리 깊은 나무’의 발행인으로 잘 알려진 한창기 선생은 생전에 플라스틱 바가지를 혹평했다. 풍토에 맞춰 지혜롭게 살아온 모습이 값싸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삽시간에 공업생산물에 자리를 내준 상황을 안타깝게 본 것이다. 이런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바가지, 특히 쌀을 이는 바가지는 한국의 대표적인 플라스틱 제품이자 가장 서민적인 생활용품으로 자리 잡았다.

1965년 부산에 내쇼날푸라스틱이 설립돼 플라스틱 제품이 본격 생산됐다. 내쇼날푸라스틱은 바가지를 첫 제품으로 내놓아 인기를 얻었다. 디자인의 핵심은 박의 특징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원래 박의 꼭지 부분은 엄지로 잡을 수 있는 ‘핑거레스트(finger-rest)’ 역할을 하고, 꼭지에서 뻗어나간 날줄은 바가지가 뒤틀리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쌀을 일 때 요긴하다. 한국의 1세대 자동차 디자이너인 박종서는 이 ‘엠보스 패턴’이 디자인에서 유용하게 활용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플라스틱 성형 과정에서 원재료가 금형 표면을 흘러갈 때 생기는 자국을 자연스럽게 활용한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박이 장식품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이 엠보스 패턴을 갈아내고 매끈하게 만든 것밖에 볼 수 없다. 정작 박 바가지의 특징이던 엄지가 닿는 부분과 날줄의 흔적은 이제 붉은빛 플라스틱 쌀바가지에서나 찾을 수 있다.

김상규 (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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