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김혜림] 장미여관의 봉숙이와 윤창중 기사의 사진

어, 이게 뭐야! 처음에는 라틴 음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씩 노랫말이 귀에 들어왔다. 이거 우리 노래잖아. 그렇다. ‘장미여관’의 ‘봉숙이’였다. 한 방송사의 밴드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들이 이 노래를 듣고 배를 잡았다던가. 그 유명한 노래를 며칠 전 처음 들었다.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였다. 반전이다. 보사노바풍 멜로디에 경상도 사투리라니.

지난해 5월 처음 방송된 뒤 ‘유쾌한 가사’ 때문에 각종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는데, 정말 심상치 않다. ‘야 봉숙아 말라고 집에 드갈라고 꿀발라스 났드나 … 아까는 집에 안 간다고 데낄라 시키돌라케서 시키났드만 집에 간다 말이고 … 야 봉숙아 택시는 말라 잡을라고 오빠 술 다 깨면 집에다 태아줄게…’ 웃으면서 들을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다.

그 다음 가사는 이렇다. ‘저기서 술만 깨고 가자 딱 30분만 셔따 가자 아줌마 저희 술만 깨고 갈께요 으흐흐 흐흐 흐흐∼∼∼으흐흐 흐흐 흐흐∼∼∼’ 가사에 명시가 돼 있지는 않지만 남자는 봉숙이와 여관이나 모텔에 들어갔고, 음흉한 웃음소리로 봐서 그 이후는 짐작이 간다.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가사’ ‘장미여관 시인이시네요’ 등등 네티즌들이 칭찬하고 있는 이 가사는 데이트 상대 여성을 강간하는 한 남자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남자 친구에게 당한 봉숙씨는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이불 뒤집어 쓴 채 혼자 목 놓아 울었을 것이다. ‘남자 친구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신고해볼까도 생각했겠다. 자신에게 돌아올 돌팔매가 두려워 가슴만 쳤겠지. 그래도 봉숙씨, 신고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 남자 친구가 ‘사랑을 찾아서 사람을 찾아서’ 헤매면서 계속 나쁜 짓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장담은 못한다. 봉숙씨가 신고했다고 해도 데이트 강간으로 인정받기 힘들었을 터이니. 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마음이 바뀌어서 독한 술을 시켜 달랬던 봉숙씨, 남자가 술만 깨고 가자니 제 발로 장미여관(?)에 따라 들어간 봉숙씨의 편을 우리 법은 들어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등 외국에선 ‘데이트 강간’의 기준이 ‘적극적 동의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적극적 저항을 했나 안 했나’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청와대 전 대변인 윤창중씨 말대로 미국과 우리의 문화가 크게 다르긴 하다. 윤창중씨가 느끼는 그 문화의 간극 속에 혹시 국내에선 비슷한 행태를 벌였는데 여성들이 묵인한 경험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윤창중씨의 ‘봉숙씨’들이 있었다면 반성해야 한다. 처음 슬쩍 엉덩이를 잡았을 때, 술에 취해 옷을 벗었을 때 따끔하게 지적했다면 그 나쁜 버릇은 고쳐졌을 것이다.

또 그런 행위가 되풀이됐을 때 공론화시켰다면 그 자리까지 올라가지 못해 나라 전체가 국제적인 망신을 사지 않았을지 모른다. 가정은 이쯤에서 접자. ‘상습범인 것처럼 저를 마녀사냥처럼 하는 것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취하겠다’는 그의 으름장이 무섭기는 하니까.

한데, 정부에서 하는 양을 보면 냉가슴만 앓은 이 땅의 봉숙씨들을 탓할 수도 없겠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리고 있는 제2차 아시아·태평양 물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홍원 국무총리 일행이 일정을 도울 인턴을 전원 남성으로 선발했다고 한다. 강행군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 없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어설픈 대처, 이 정부 정말 믿음이 안 간다.

김혜림 산업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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