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차정식] 도전과 실천의 용기가 관건 기사의 사진

5년 전 폭풍처럼 몰아닥친 금융위기의 파동 이후 추락한 경제가 좀처럼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이웃 나라들이 이런저런 적극적인 정책 공세로 지친 경제의 체력을 회복하며 다소간 용트림을 하는 것과 비교해 봐도 우리 경제의 근래 무기력은 유난히 딱해 보인다.

‘창조경제’의 개념 논쟁으로 한동안 시끌벅적하더니 그 ‘창조’의 동력이 어디에 숨었는지 경제 현장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간 또 불거진 북한의 군사적 위협 사태는 경제 분위기에 초치는 악재로 작용했고, 여전히 복류하는 휴화산이다. 대기업이 쌓아놓은 현금이 엄청나다는 소문과 함께 적극적 투자를 꺼리고 일자리 창출이 기대치에 못 미쳐 아쉬워하는 소식도 여전하다.

급기야 이틀 전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영국령 섬의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한국인 기업가 명단 245명 중 일부를 공개했다. 전 경총회장과 재벌급 인사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 경제 일선에 선 기업의 주역들이 이처럼 이기적인 자금 도피행각을 통해 사특한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동안 정직과 희망의 결핍으로 인한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이월됐을 것이다. 그나마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방지하는 법적 규제 조치를 강화한다는 소식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이조차 불만세력의 심기를 다독이며 얼러주다 보면 효과가 흐지부지되거나 또 다른 편법의 꼼수가 발명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하나님의 신령한 관심사

경제는 개인의 가정살림으로부터 나라와 공동체의 기틀을 세우는 물질적 기초다. 물질적 가치가 지나치게 우상화되는 극단적 편향도 문제지만 경제가 활력을 상실한 채 비실대는 모습에 즐거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 경제의 일선에 선 크고 작은 주체로서 지친 경제에 격려사를 보내야 할 시점이다. 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거대한 구조의 운용과 핵심 정책의 고안과 별도로 제각각 먹고사는 자리에서 희망을 전파하는 복음의 장사꾼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경제는 심리라고 하지 않던가. 복음의 범주에는 재화의 적극적 활용과 투자를 독려한 하나님 나라의 경제법칙이 포함돼야 마땅하다. 예수의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이 장사를 벌이면서 무슨 위기를 겪었고 어떤 현실적 장애를 헤쳐 나갔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그 자본금을 땅에 묻어두지 않고 그것을 선물로 맡겨준 주인을 위해, 그 집안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뭔가 해보려는 도전정신을 가졌다는 사실만은 명백하게 안다.

이렇듯 ‘경제(oikonomia)’는 그 어휘의 뿌리에 박힌 성서적 의미대로 집안의 기틀을 세우는 창조적인 작업이다. 한 집안에서 한솥밥을 나눠 먹고사는 일상의 문제가 구원의 역사와 우주적 섭리를 관장하는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신학적 문제와 직결된다. 경제가 물질적 재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신령한 관심사로 재인식돼야 할 이유이다.

도전과 실천의 용기가 관건

근래 몇 십년간 대통령으로 경쟁하던 후보자들의 단골 구호는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부정한 사고가 터져 망측한 치욕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마다 대기업들이 말버릇처럼 되뇌던 속죄의 변명도 국가경제의 회복에 성심으로 기여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경제가 힘들다는 탄식이 끊이지 않는다. 이제 새로운 성장엔진의 개발을 통해 획기적인 도약의 동력을 키우는 데 경제주체들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특정지역, 특정계층의 아우성에 비위를 맞추려는 경기부양이란 명목의 땜질식 미봉책은 하도 많이 들어 식상해진 상태다. 경제 체질 개선과 구조 개혁에 대한 전문가들의 충실한 진단은 이미 나와 있다. 경제에너지의 집중과 투자가 중요하다. 도전과 실천에의 용기가 관건이다. 도약하라, 한국경제! 힘내라, 민생경제!

차정식 한일장신대 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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