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김무정] 크리스천은 배타성 경계해야 기사의 사진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한 ‘세계가치관조사자료(WVS)’ 중 한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의식이 눈길을 끌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이 ‘다른 인종을 이웃으로 둘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5% 미만인 반면 한국은 36.4%였기 때문이다. WP는 경제 및 교육수준이 높고 민족적 갈등이 없는 한국이 인종차별이 심한 편인 사실에 ‘이례적’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인에게 배타성이 있음을 보여준 통계라 할 수 있다.

차별 느끼는 성도들 많아

교회 내에서 차별을 느꼈다고 토로하는 성도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들어보면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담임 목사가 돈 있고 능력 있는 성도들에게만 더 친절하고 예우를 잘한다는 것이다. 힘없고 보잘것없는 성도들에겐 눈길도 잘 안 주고 심방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예배당 앞자리에 장로와 권사 지정석을 두느냐고 항의하는 경우도 보았다. 교회가 소위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기업인 등에게 일반 성도보다 빨리 ‘장로 직분’을 맡기는 것에도 불만을 갖는 성도들이 있다. 탈북자, 다문화가정 주부들도 교회에서 드러나지 않게 차별을 느낀다고 밝힌다.

최근 ‘여성 리더십’의 부각과 함께 교회 여성 차별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여성도의 교회 내 역할이 단순한 봉사에만 주로 국한되고 여교역자의 경우 업무와 사례비에서 남교역자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일반 사회생활에서의 차별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자매라고 강조하는 교회 안에서조차 차별을 느껴야 한다면 이것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뒤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크게 성장한 초대 교회에서도 교인들끼리 차별하는 문제가 심각했다. 그때도 결국 돈과 권력과 관련된 차별이었다. 당시 교회 입구에서 안내를 맡은 사람들이 부자들을 좋은 자리에 앉히고 초라하고 돈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박대했던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2000년 전 믿음의 선배, 야고보는 명쾌하게 정의를 내린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 2:1)

야고보는 외모나 경제력으로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할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믿음은 돈과 권력으로 살 수 없는 무형의 재산이다. 형체로 표현하거나 무게로 달 수 없지만 원하는 만큼 마음껏 가질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택해 믿음으로 부요하게 해 주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신다. 따라서 교회엔 가난한 자가 없다. 모두가 부요한 자들일 뿐이다.

교회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차별이 발생하는 것은 세상의 물질적 기준을 교회 안에서도 적용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조직은 수직형이지만 교회는 수평형이다. 교회 안에서 세상의 대우를 기대한다면 이는 아직 여물지 못한 크리스천이다. 오히려 세상에서 좋은 대접을 받고 사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더 섬기고 봉사해야 한다. 신앙인의 바른 자세와 본분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가치관 조사자료를 소개했지만 만약 교회에서 성도들의 ‘신앙심 순위’가 저절로 매겨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예상치 못한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싶다. 차등을 두어 구별한다는 뜻의 ‘차별’이란 단어가 교회에서만큼은 사라져야 한다.

김무정 종교부장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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