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북한 정권 믿을 수 있을까요? 기사의 사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민주주의도, 인민도, 공화도 사라진 지 오래다”

미국 미네소타주 북부, 인구 22명인 도셋 마을의 보비 터프츠 시장은 네 살이다. 최근 제비뽑기로 당선됐다. 임기는 1년. 어른 시장의 거드름보다는 꼬마 시장의 앙증맞은 재롱이 주민들의 행복지수를 훨씬 더 높여줄 법하다. 젖먹이를 갓 면했을 아기에게까지도 시장이 될 기회를 부여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발상이 경이롭다.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다. 리더(leader)의 지위는 실력으로 쟁취하는 게 아니라 팔로어(follower)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다. 리더는 스스로 서는 사람이 아니라 팔로어에 의해 세워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지위에 있는 사람이 리더가 아니라, 그를 올려 세운 팔로어들이 리더다. 이것이 민주정치의 원리다.

고대 아테네는 민주정치의 본향으로 일컬어진다. 민주 아테네 최고행정기관 불레(평의회)의 의원 500명은 추첨에 의해 뽑혔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24시간 동안 의장직을 맡았다. 말하자면 임기 1일의 대통령이었다.

추첨으로 정치 및 행정 책임자를 뽑기로 한 것은 공직 수행을 시민적 의무로 여겼기 때문이다. 추첨제의 또 다른 배경은 시민들의 자기신뢰였을 것 같다. 누가 불레 의원이 되고, 누가 의장이 되건 정치와 행정은 모든 시민이 함께 해나가는 일이라는 믿음이 공직 추첨의 전통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구성원 모두가 리더로서의 자각과 책임의식을 갖는 정치가 곧 민주정치다. 그래서 민주정치가 소중하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의 비위를 맞추는 데 일단은 성공한 듯 보인다.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24일 시 주석을 만나 국방위원회 김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을 제대로 긴장시켰으니까 이제쯤은 풀어줄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앞으로는 고분고분해질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지배세력은 결코 신의 있는 집단이 되지 못한다. 이들은 인민에 의해 선택받은 게 아니라 자기들 힘으로 인민 위에 군림할 권리와 자격을 획득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민주주의’도, ‘인민’도, ‘공화’도 사라진 지 오래다. 김씨왕조는 오직 ‘지배집단의 생존논리’에 따라서만 결정하고 움직일 뿐이다. 따라서 애초에 신뢰성이란 게 있을 리 없다.

안된 말이지만 이런 체제는 상시적 불안정을 못 면한다. 날마다 악몽에 허덕일 게 뻔하다. 임기에 제한은 없으나 확실히 보장된 임기 또한 없다. 단 하루의 평화도 허락되지 않는다. 고대 아테네 불레 의장의 하루 임기, 도셋 마을 네 살짜리 시장의 1년 임기가 부러워질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북한 역성들기 바쁜 정치인들에게도 한 마디쯤은 할 필요가 있겠다. 북한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북한’이 어떤 북한을 가리키느냐가 문제다. 주민들을 쥐어짜고 억누르면서 자신들의 권세와 영화에 집착하는 세력들의 북한인지, 그곳의 주인이 되어 살아야 할 2400만 동포의 북한인지, 그것부터 분명히 할 일이다.

“전쟁이 터지는 경우 남조선에 있는 외국인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우리는 바라지 않는다. 서울을 비롯해 남조선에 있는 모든 외국 기관과 기업들, 관광객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신변안전을 위해 사전에 대피 및 소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는 것을 알린다.” 지난달 9일 발표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대변인 담화다. 입만 열면 ‘민족끼리’ 운운하던 자들의 협박이다. 외국인은 죽이기 싫으니 빨리 피하라는 것인데, 그러면 우리만 죽이겠다는 뜻 아닌가.

‘北邙山上列墳塋 萬古千秋對洛城 城中日夕歌鍾起 山上惟聞松柏聲’(북망산 위에 널려 있는 무덤들, 오랜 세월 낙양과 마주본다. 저녁이면 성안에 풍류소리 일고, 산 위에는 들리느니 송백 스치는 바람소리뿐).

초당(初唐) 시인 심전기(沈佺期)의 칠언절구 ‘망산(邙山)’이다. 삶과 죽음은 지척이다. 인민의 고통과 고혈로 누리는 권세와 영화가 얼마나 갈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인지….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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