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송전탑과 에너지 민주주의 기사의 사진

“농어촌에 소규모 재생에너지 조합 등 활성화해 지역단위 전력자급률 높여야”

경남 밀양의 한 70대 농부가 지난해 1월 16일 자살했다. 당시 74세이던 이치우씨는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보라교 앞 도로에서 휘발유를 온몸에 끼얹고 분신했다. 이 지역은 고리원자력 발전소로부터 고압송전선로가 지나갈 예정부지다. 극단적 선택을 앞두고 그는 “내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려나”라고 연신 읊조렸다고 한다.

지금은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밀양 밀성고 교사 이계삼씨는 당시 한 일간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씨 형제가 일구어온 논 열 마지기는 평당 20만원에 시가 4억원을 호가하는 땅으로 구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 두 형제의 희망이었다. 그런데 2005년 765㎸ 송전탑 공사 계획이 발표됐다. 논 한가운데에 높이 14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철탑이 박히게 되었다. 고압전류 아래서 농사를 짓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 그들은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보상금은 6000만원, 부동산 가치는 ‘제로’가 되어버렸다. 69개의 철탑이 지나가는 밀양지역 5개면 해당 주민들의 사연이 대개 그렇다.…농협은 슬슬 대출금 상환 압박을 해왔다.”

이렇듯 지금 송전탑 갈등은 적어도 밀양 주민들에게는 생존권이 걸린 싸움이다. 결코 님비로 치부할 만큼 한가한 것이 아니고 비현실적 보상규모의 문제도 이미 넘어섰다. 765㎸ 송전선로는 우리가 흔히 보는 154㎸ 송전선로보다 18배나 많은 전기를 보내는 초고압 송전선로이다. 따라서 그로부터 나오는 전자파와 소음도 그만큼 더 클 수밖에 없다.

지역주민, 정부와 한국전력, 그리고 국회는 최근 각각 3명씩 추천하는 9명으로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렇지만 초전도 케이블 설치나 기존 철탑의 전선교체 등 대안에 맞서 한전은 원안 고수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 충분한 보상금 지급도 불가능한 것이, 그렇게 해 줄 경우 송전비용이 너무 커져 원거리 송전방식 자체가 타당성을 완전히 잃고 만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나라가 에너지를 만들고 쓰는 방식에 있다. 공급중심의 에너지정책, 원거리 대량수송 위주의 중앙집중 공급방식으로는 송전탑 갈등이 계속 불거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전력생산은 충남(24.9%), 경북(14.9%), 전남(14.4%), 경남과 인천(각 13.2%)이 거의 대부분을 맡는다. 반면 서울(0.3%)과 경기(1.8%)는 전력을 거의 생산하지는 않으면서 전체 전력의 10.9%와 21.4%를 소비한다. 게다가 원자력발전소는 경남·북과 전남에 집중돼 있고, 화력발전소는 충남과 인천에 몰려 있다. 서화동핵(西火東核)이다. 전력생산과 소비처 간의 거리 격차는 더 많은 고압 송전선로를 필요로 하고, 많게는 30%까지 송전 손실을 낳는다.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이런 지역 간 불균형은 더 심화될 예정이다.

싼 전기요금이 가장 화급히 고쳐야 할 문제다. 전기낭비를 줄이면 발전소와 송전탑 추가건설 수요가 감소한다. 전기요금의 대폭적 인상 예고제를 통해 전기난방과 산업계의 전력 낭비를 몰아내야 한다. 전기의 열 전환 효율은 30%미만인데도 석유제품보다 더 싸다는 이유로 전기를 이용한 난방이 급속히 늘었다. 수년 전 녹색성장위원회는 ‘전기로 난방을 하는 것은 생수로 빨래를 하는 것과 같다’는 경구를 만들어 잇따른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여론조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전기소비량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국민소득이 2배인 나라들보다 전기를 더 많이 쓰고 있는 것이다.

지금 고압 송전탑은 마치 바벨탑처럼 우리 사회의 탐욕을 상징한다. 선진국의 실내온도는 물론 적정 실내온도를 초과하는 냉난방을 하기 위해, 더 큰 집에 살기 위해, 더 빨리 이동하기 위해 우리가 전기를 낭비하는 동안 어떤 지역 주민은 건강을 해치고, 환경은 훼손된다. 더 이상 늦기 전에 농어촌에 기반을 둔 소규모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등을 활성화해 전력의 지역단위 자급률을 높여가야 한다. 바이오에너지 등 노동집약적인 재생에너지 산업은 일자리를 늘리는 좋은 방안이기도 하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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