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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발견] (21) 총 시리즈

[디자인의 발견] (21) 총 시리즈 기사의 사진

디자인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지, 무엇을 디자인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직업적 디자이너들이 무엇이든 디자인하겠다고 선언한다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디자이너 필립 스타크는 무기, 담배, 술을 제조하는 회사를 위해서는 일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런 그가 몇 년 전 플로스사를 위해 ‘총 시리즈’를 디자인했다. 소총 모양의 금빛 기둥이 전등갓을 받치고 있는 조명기구다.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전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고 평화를 희망하는 역설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냉전 시기를 대표하는 소총 두 가지의 모양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AK-47은 세계 분쟁 지역에서 줄곧 등장한 자동소총이고 M-16은 한국인의 기억에 강하게 남은 무기라서 낯설지 않다.

그런데 무기를 디자인하지 않겠다는 디자이너의 선언이 이젠 의미 없는 것 같다. 최근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라는 조직이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는 최적의 플라스틱 권총을 디자인해 공개한 것이다. 이제 일반인들이 총을 디자인할 날도 멀지 않았다.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대로 집집마다 ‘나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출력하겠다면 어떻게 막겠는가. 기술이 디자인과 만나는 창의적인 융합 열풍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김상규 (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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