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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sands and thousands of years

Would not be enough

To tell of

That small second of eternity

When you held me

When I held you

One morning

In winter’s light

In Montsouris Park

In Paris

On earth

This earth

That is a star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evert·1900~1977)

천 년이 또 천 년이 걸린다 해도

충분하지 않으리라.

네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입맞춤한

그 영원의 한순간을

말하기에는.

어느 아침

몽수리 공원의

겨울 햇살 속에서.

파리에 있는

지구 위에 있는

이 우주.

그 우주 속의 별 안에서.


시인 구상(1919∼2004) 선생은 대학의 시 창작 강의 첫 시간이면 학생들에게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와 프레베르의 ‘공원’을 낭독하게 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구상 시인이 첫 시간을 위의 두 시로 시작하는 것은 비단 이 시들이 세계 시사에 빛나는 명작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시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하고 싶어했다. 몽수리 공원에서 있었던 어느 날 한 순간의 키스를 수천년의 세월 속에, 이 거대한 우주 위에 올려놓을 줄 아는 시인의 자기 인식론.

모든 고통이 흐르고 강과 밤이 사라져버려도, 그리고 사랑과 세월이 흘러내려도 여기에 남아 종을 울리는 자, 그가 곧 시인이라는 자기 인식.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시를 읽는다면 이 작은 한 편의 시가 수천년의 세월 속으로 확산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시인의 가치는 바로 그런 지점에 있다. 프랑스어로 쓰인 원시는 미국의 리처드 윌버(Richard Wilbur)가 영역한 것이다.

임순만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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