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한승주] 할리우드의 이유 있는 반격 기사의 사진

지난해 한국영화의 성적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2편이나 나왔고, 한국영화 관객 수가 처음으로 1억명을 넘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을 받으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올 초까지만 해도 훈훈한 분위기는 이어졌다. ‘7번방의 선물’이 1200만명을 넘으면서 지난 2월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82.9%까지 치솟았다. 극장을 찾은 관객 10명 중 8명은 한국영화를 봤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가.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은 난공불락이니 말이다.

그런데 명암이 슬슬 엇갈리기 시작했다. 한국영화계가 이렇다 할 작품을 못 내놓고 있는 사이 할리우드는 칼을 갈았다. 다른 곳에서 먼저 개봉하면 ‘김빠진 콜라’ 같다고 여기는 한국 관객을 위해 자국 개봉을 미루고 한국으로 몰려왔다.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 개봉하는 것이 유행처럼, 또는 상업적인 성공을 위한 공식처럼 여겨졌다.

올 봄 할리우드 스타들이 물밀 듯 몰려왔다. 마치 19세기 금광을 찾아 미국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골드러시처럼. 톰 크루즈,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아널드 슈워제네거, 윌 스미스, 빈 디젤까지. 이들은 대규모 기자간담회와 소규모 인터뷰를 잇달아 갖고, 대형 극장에서 레드카펫 행사를 하며 한국 관객을 만났다.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는 한국에 가면 어디에서 묵고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하라는 매뉴얼까지 돌았다. 한국을 여섯 번이나 다녀간 톰 크루즈가 추천했다는 한 호텔은 인기가 치솟았다. 할리우드 내부적으로도 내한 러시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놓았다. “할리우드가 점점 현명해지기 때문이다”(롤랜드 에머리히 감독)라고. 몇 년 새 미국 내 극장 수입이 줄고 국외에서 벌어들이는 비중이 늘면서 할리우드 영화사의 해외 마케팅이 점점 공격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력 때문일까. 견고해 보였던 한국영화 시장은 불과 석 달 만에 뚫렸다. 지난 4월 25일 개봉한 ‘아이언 맨3’가 결정타였다. 무려 890만명이 이 영화를 찾았다. ‘위대한 개츠비’와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도 순항 중이다.

지난달 미국영화 점유율은 66.6%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영화 점유율은 30.5%까지 곤두박질쳤다. 불과 3개월 사이에 한국영화 점유율이 52.4% 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견고해 보였던 한국영화 경쟁력이 실제론 얼마나 허약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한국영화는 할리우드의 대공습 속에 개봉을 미루며, 살아남을 수나 있을지 눈치 보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이는 묘한 기시감을 갖게 한다. 2006년에도 그랬다. ‘괴물’이 1000만 관객을 넘었고, 한국영화산업이 급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뜨린 영화인들은 곧 ‘한국영화 춘궁기’가 올 것이라는 지적은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그 다음해부터 참신한 기획이 없어 수많은 영화의 제작이 무산됐고, 끝 모를 구렁으로 떨어졌던 경험이 있다. 누구보다도 영화인 스스로 잘 아는 교훈이다.

다시 2013년, 할리우드의 공습은 일시적인 현상일까. 글쎄다. 올 여름 거대 자본을 들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줄줄이 들어올 기세다. 우리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설국열차’ ‘미스터 고’ 같은 몇몇 기대작의 개봉만 손꼽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 잘될수록 탄탄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혜안과 뚝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승주 문화생활부 차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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