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승한] 고난 기사의 사진

성경 욥기를 읽으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욥기는 묘사하고 있다. 그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뒀고 그가 소유한 양과 약대와 소와 암나귀와 종이 많아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 불렸다.

그런데 어느 날 욥에게 자녀들과 재산을 다 잃어버리는 고난이 찾아왔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실하고 정직한 믿음을 지켰던 자신에게 혹독한 고난이 찾아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더욱이 하늘에서는 그가 그토록 경외하고 있는 하나님과 사탄이 자신의 믿음과 경건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욥에게 더욱 기가 막힌 일은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가 비난하고, 절친했던 친구들도 “네가 얼마나 죄를 지었으면 이러한 고난을 당하는가?”라며 위로는커녕 정죄하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욥은 세상 논리와 관념을 뛰어넘는 고백을 한다.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오니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변함없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죄가 아닌 또 다른 기회

살아가면서 고난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한두 번은 고난 가운데 처하게 된다. 자신의 고난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들의 고난이 알려지지 않을 뿐 지금도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고난과 고초를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고난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 6·25전쟁 때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여했다가 부상을 입고 유공자 신분도 받지 못한 채 평생을 어렵게 사는 사람들, 베트남전 참전 고엽제 피해자들, 미혼모들, 노동 현장의 피해자들 등. 욥의 친구들이 말한 것처럼 고난이 죄의 결과라면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이 없듯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고난과 고초로 몸살을 앓고 있어야 한다.

고난은 삶의 과정속에 나타나는 한 모습일 뿐 그것을 죄의 결과로 받아들이거나 정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고난은 오히려 삶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더 큰 축복과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숨은 자리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사도 바울의 고난은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만들어낸 결과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 같은 믿음이 필요하다. 거기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치유하는 교회가 되어야

전통지혜서의 계산법대로 한다면 욥은 아주 나쁜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잘못 없이 아주 어려운 운명의 타격을 겪어야 했던 욥의 이야기는 전통지혜서에서 가르치는 인생관의 한계를 드러낸다. 하나님은 욥이 절망 가운데서 볼 수 있었던 예측 불가능한, 아무렇게나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더욱이 하나님은 창조주의 높은 지혜를 가지신 분인데 인간이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자신들이 생각한 정의에 맞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이 같은 생각과 논리를 가진 사람들로 인해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 오늘의 아픈 현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사람들로 인해 이 시대 위대한 영웅과 스승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고난당한 자를 치유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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