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남북, 국가 대 국가로 마주 앉아야 기사의 사진

“양측 간의 ‘불편한 진실’ 외면하면 정상적인 관계 구축 영영 불가능하다”

남북한 당국자들이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정부의 거듭된 대화제의에 험한 비난만 퍼부어대던 북한의 돌변이 의아하긴 하지만 어쨌든 반갑다. 북한의 지배세력이 갑자기 국가전략을 바꾼 것은 아닐 터이다. 미·중 정상회담 때문이었거나, 경제난이 너무 심각해졌거나 무슨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은 대화 과정을 지켜볼 일이다. 평가는 뒤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기대를 안 할 수도 없겠으나 성급한 바람은 좋지 않다. 북한 체제는 오래전에 귀환불능점(PNR)을 넘어서버렸다. 북한의 지배세력이 현 왕조체제를 ‘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바꿀 가능성은 제로다. 따라서 저들이 카운터파트가 되는 대화나 회담에서 ‘거룩하고 지속가능한 결론’이 도출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남북한 체제는 서로 상대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대단히 모양이 좋은, 그러나 굴절률이 과도한, ‘민족’이라는 이름의 렌즈를 끼고 보는 탓이다. 우리는 그 렌즈를 통해 우리와 북한 사이의 동질성을 확인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반면 북한은 ‘민족’이야말로 우리의 아킬레스건, 혹은 명치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발가락이라도 아직은 닮아 있기를 바란다. 6·25전쟁, 산화해 간 수많은 목숨들을 잊어가면서까지 ‘남북 화해, 남북교류, 남북협력’ 등의 명제에 매달린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민족’을 ‘판단중지!’라는 명령어로 인식하고 있다. 현실에 대한 판단이 중지되면 조건반사적 ‘민족애 과시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말인데, 이 렌즈를 벗고 맨눈으로 상대를 보는 연습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돌아가면 왜곡됐던 상이 바로 보인다. 우리는 한반도기라는 것이 상징하는 ‘한민족공동체’를 지향하지만 지금 그 속에 살지는 않는다. 서로 무력대치를 하고 있는 두 주권국가 안에 각각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속셈이 어떤 것이건,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현재로서는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 기저에는 ‘정상적 국가관계 회복’의 의지가 있다고 믿는다. 한쪽의 의도적 분노와 협박, 다른 한쪽의 조건반사적 민족주의 같은 것으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잘 사는 형으로서 가난한 동생을 돕자’는 따위의, 농담도 안 될 논리는 이제 잊어버려야 한다. 북한체제는 형에게 떼쓰고 칭얼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일을 저질러 놓는 저지능의 동생집단이 아니다. 고도로 계산에 밝은, 특히 생존본능이 유난히 강한, 교활하고 치밀한 집단이다. 파안대소를 하며 건배하고, ‘통 크게’ 말 인심을 쓰는 것만으로 남한의 모모한 인사들을 (시쳇말로) ‘뿅 가게’ 한 독재자와 그 옹위세력의 나라다.

억지스러운 비대칭관계가 지속되면 북측의 요구는 더 많아지고, 분노는 더 잦아진다. 이미 충분히 경험한 바를 부인하면서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이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전형적 전략물자인 ‘달러’를 교전상대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하면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뺨을 맞아 왔다. 이게 우리가 목격해온 ‘불편한 진실’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남북관계를 정상적 국가관계로 전환시키는 데 정책의 역점을 둬야 하겠다. 원칙주의자, 신의주의자 박 대통령이 다시 정치적 고려 때문에 방향전환의 고삐를 놓아버리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상호존중과 호혜의 정신, 이것이 남북한 상생공영의 제1조건이다. 장담하거니와 국가 대 국가로 마주대하게 되면 관계는 건강하고 건전해진다.

<프랑스 유머 하나> 베르나르와 폴이 관절염 때문에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환자들은 고통 때문에 소리를 질러대곤 한다. 그런데 베르나르는 웃음 띤 얼굴로 편안하게 치료를 받는다. 치료 후 폴이 묻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베르나르가 비웃듯이 대답한다. “누가 바보같이 아픈 다리를 내민대!”

쉽게 고쳐지는 고질이나 습관은 없다. 그렇지만 당장의 고통이 싫어서 환부를 계속 감추면 치료는 영영 불가능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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