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차정식] 원전으로부터의 구원 기사의 사진

원전이 말썽이다. 전부터 말썽이었는데 요즈음 또다시 문제가 터지고 있다. 체르노빌 참사의 기억이 잦아들고 1년3개월 전 후쿠시마 사태의 악몽이 현재 진행 중인데, 우리의 경각심은 대체 어디로 실종되었는가.

한때는 노쇠한 고리원전 1호기의 고장과 전력생산 중단이 문제가 되었다. 전후 사정을 쉬쉬하며 위장하기에 급급한 기만적 대응방식은 더 심각했다. 지금은 불량부품 사용을 비롯한 관리체계 부실과 여러 겹의 먹이사슬로 얽힌 총체적 난맥상이 불거져 새삼 뜨악한 분위기다.

뒷북치며 미봉하기 급급한 당국은 구조적 문제에 재발방지대책이란 걸 내놓았다. 관리감독 주무부서인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전 공기업 퇴직자의 입찰 제한, 유관업체 재취업 규제 강화, 입찰 공정성 강화 등이 그것이다. 원전 관련 정책을 주도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대대적인 조직 혁신 요청도 빗발친다. 교과서적 대책일망정 제대로 시행해 상황을 최대한 개선하길 바란다.

원전을 어찌해야 할까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우리나라 원전 의존도는 세계 2위, 밀집도는 1위다. 원전 규모는 세계에서 5번째로 크다. 천재지변이든, 관리감독 소홀로 인한 사고든, 한번 대형재난이 터지면 나라가 온통 아수라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미세먼지처럼 조금씩 누출된 방사선에 발전소 주변 생명들이 은근히 피폭된 혐의가 짙다. 핵폐기물 처리 문제도 틈나면 불거지는 골칫거리다. 후쿠시마 사태로 일본 국토가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는 진단을 가벼운 풍문으로 흘려서는 안 된다. 원전을 국가성장 동력의 중추적 사업으로 추진한 이전 정권은 해외 수출을 개척하는 데 열심이었다. 원전이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는 판에 박힌 구호는 수시로 되풀이되었다. 그런데 생산 공정이 이렇게 속으로 뒤틀려 있는 줄 눈치나 채고 있었을까.

독일이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기키로 하고 이탈리아가가 원전 재가동을 국민투표로 부결시킨 일이 흔히 원전 해법의 모범사례로 거론된다. 원전의 위험한 속성을 심사숙고해 발전소를 아예 짓지 않은 사례도 많다.

한편 원전을 속히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의 무책임성이 종종 현실론 차원에서 제출된다. 전력 공급의 갑작스런 차단을 경고하는 정부의 엄포가 현실론을 부추긴다. 각자 일상생활에서 펑펑 전력을 쓰면서 위선적으로 생태적 분위기를 띄운다며 비아냥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재생에너지 개발로 원전을 점진적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보는 온건한 현실론자도 있고,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비하는 현대인들에게 생활스타일의 근본적 변화를 촉구하며 유기농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급진적 생태주의자도 있다.

에너지의 구원, 생명의 구원

원전이 우리의 생명을 재난의 위험에서 구원할 수는 결코 없다. 반대로 원전이라는 잠재된 위험을 끌어안고 삶을 연명하는 구조적 질곡으로부터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우리가 추구할 바람직한 삶의 양식이 소박한 향유의 길임을 가르쳐준다. 우리의 생명 에너지는 성령의 바람으로부터 불어온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일군 기계문명의 인공적 낙원이 우리 삶의 진정한 복락일 수 없다. 선악과와 바벨의 무절제한 도발에서 교훈을 찾아도 좋다.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종말 이후 회복된 새 땅의 비전은 오염되지 않은 생명수가 흐르고 생명나무 과실이 풍성하게 맺히는 풍경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보존하고 회복하려면 멀리 내다봐야 한다. 먼저 원전이 불가피하다는 미망의 사슬을 깨자. 거기 잠재된 극단적 폐해의 위험을 숙지해 지속가능한 생명 에너지의 개발로 여론을 몰아보자. 원전으로부터의 구원이 갈급해져야 뚫어낼 수 있는 숙제이다.

차정식(한일장신대 교수·신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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