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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소리] 호국의 달에도 압록강은 말이 없고

[글방소리] 호국의 달에도 압록강은 말이 없고 기사의 사진

머리 무겁고, 가슴 답답한 여정이었다. 우리의 아픔과 한을 어찌 해볼 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리 서당에서 고구려 유적 답사 떠나기 전, 고향이 신의주인 언론계 대선배께서 “꽤 마음 아픈 여행이 될 것”이라 해도, 허리가 시원찮은 나는 백두산 오를 일만 걱정했다.

압록강 건너 고향땅을 몇 차례 보는 것만으로 그리움을 달래고 오셨다는 그분은 덧붙였다. “자기는 북한에 연고가 없으니 나보다 덜할 거야. 아니 애국심이나 감동이 워낙 별로니 전혀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르지.”

한국 팀 경기가 있으면 너나없이 열광하는데, 게임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승패에는 더더구나 관심 없는 나를 ‘애국심도, 감동도 없다’며 늘 놀리시던 터였다. 이에 “애국심은 무뢰한들이 도망가 최후로 숨는 곳”이라는 새뮤얼 존슨의 말로 둘러대고, 나라걱정 같은 것은 여의도 애국 전문가들에게나 맡기시라고 하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나 그분 기대(?)와 달리 일정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일시적 통증이 아닌 걸로 봐, 별수 없이 나도 애국꾼이 된 모양이었다. 스포츠 경기가 아닌 탓이리라.

고구려가 수, 당과 전쟁할 때 쌓았던 비사성을 중국식으로 재축조하고, 천리장성 일부였던 박작성(중국명 호산장성)을 복원하여 만리장성 동쪽 시발점이라고 주장하는 점 등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동북공정’ 일환으로 고구려 역사를 중국화하려는 의도는 널리 알려진 것이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막상 현장을 보니 속수무책인 우리 현실이 참담했다. 첫 번째 수도였던 졸본성을 오녀산성이라 부르는 것 역시 불편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영토와 역사가 분리된 상황이니….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집안·集安)에서는 더욱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백두산 등정과 집안시 관광에 대해 가이드가 당부하는 말은 삼엄하기까지 했다. 백두산 천지에서 애국가 합창하고 만세를 부르곤 했는데, 이제 그러면 바로 중국 공안이 출동한다는 것이다. 사진 촬영만 허용된다. 광개토대왕비도 마찬가지여서 비각 건물 밖에서만 촬영이 가능하다.

3년 만에 재개장, 지난달 1일 개방한 집안시 고구려박물관은 5월 말부터 한국인도 관람이 허용됐다. 그러나 입장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소지품 중 여권지갑도 안 될 정도였다. 관람하는 동안 공안이 줄곧 따라 붙었다. 도록도 없었다. 한국인한테는 박물관이라기보다 고구려 유물 수용소였고, 간신히 면회만 하고 나온 꼴이었다.

고교 교과서에도 실리고, 서당의 한국 한시(漢詩) 시간에 집중적으로 읽었던 유리왕의 황조가도 거기에 갇혀 있었다. 한글 풀이는 당연히 없었다.

집안시는 관광객 90% 이상이 고구려 유적과 북한 땅을 바라보기 위해 찾는 한국인이라고 한다. 한국의 비극과 불행이 그들의 관광 상품인 것이다.



강 건너 북한을 보면서 우리 서당 식구들은 또 다른 고통과 분노를 견뎌야 했다. 일보과(一步跨·한 발만 건너면 북한 땅이라는 뜻)라고 새겨진 비를 세워 놓은 곳은 진짜 조그만 개울이 양국 사이에 있었다. 국경이라기보다 마치 들판에서 바로 옆집 밭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탈북자가 늘면서 겹겹이 철조망을 쳤다는 것이다.

압록강 유람선에서 느낀 민족의 비극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소리치면 들릴 거리에 오가는 북한군과 빨래하는 여인들, 그리고 헐벗은 산들은 우리의 상처 바로 그것이었다. 쪽배를 타고 다니며 유람선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북한 행상한테 카메라를 들이대자 험악한 눈초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화가 나기보다는 슬펐다. 어쩌다 이리 되었는가.

“부모형제 친구 다 이별하고, 한줄기 피눈물로 압록강 건너, 한숨으로 부모국을 하직하였네. 임을 두고 떠나온 외로운 내 몸, 간 곳마다 고생이요 학대로구나. 동포야 묻노니 내 죄뿐이냐. 너 죄도 있으리니 같이 나가자”(이종정의 ‘만몽답사기’ 중에서, 조선일보 1927년 10월). 일제 강점기 만주로 떠나던 동포들이 불렀다던 노래가 울컥 와 닿았다. 도대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왜 이리 아파야 하는가. 애국 전문가들에게 묻고 싶었다.

백두산과 압록강을 접하고 보니 6·25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일제 강점기는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음을 절감할 수 있었다. 압록강 안개처럼 무거운 앙금으로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정한 백두산은 침묵만 지키고, 무심한 압록강은 말 없이 흘렀다.

여정 마지막 날 처연한 내 표정을 한참 들여다 보던 가이드가 한 마디 했다. “연변 쪽으로 한번 오세요. 또 다른 아픔이 있으니까. 두만강(북간도 지방)은 이곳(서간도)보다 더 서러워요.”

박연호(언론인·전통문화연구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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