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원자력계의 비리와 비전 기사의 사진

“독점적 지식을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전문가만으론 원전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원전 마피아’라는 말이 언론을 뒤덮고 있다. 원전비리 수사단은 시험 성적이 조작된 부품이 적어도 6개 이상이며 18군데의 원전에 납품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상태다. 국민들은 이것이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말을 잃고 있다. 1급 이상 간부 179명이 전원 사표를 제출한 한수원은 지난해 11월 품질검증서 위조 사건이 터졌을 때도 전원 사표를 제출한 바 있지만 수리된 적은 없었다는 지적에 뼈아파한다.

국민의 매를 달게 받겠다. 검찰 수사로 모든 비리를 밝혀내 털어버릴 것은 완전히 털어버리고 가야 한다. 결연함을 담고 있는 한수원 측의 반응이다. 원전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운영사인 한수원의 어려움을 이해는 하더라도, 원전의 중요성에 비추어 비리를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미스터리다.

원전 설계, 부품 제작, 검사, 감독, 가격결정 등 원전에 관련된 전 과정을 한국전력 계열의 같은 계통 사람들이 커넥션으로 구조화됐다면 이건 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연결부품 공급계약 업체인 JS전선이 부품 관련 검증업체(새한티이피)를 직접 선정하고, 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 등 승인기관의 퇴직자들은 부품업체나 협력사에 재취업하는 것이 관행이라면 이건 보나마나다. 감독기관이 피감기관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민간 검증 업체에 대한 인증기관인 대한전기협회의 회장을 한전에서 맡고 관련사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다면 부패가 발아할 수 있는 최적의 온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전문가 집단이 어떤 맹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특징적인 사례로 기록할 만하다. 전문가들이란 독점적인 지식을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전문가 집단에는 건전한 아마추어 정신이 수혈돼야 한다. 얼마 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구성을 놓고 비전문가가 포함됐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비록 전문 서적과 도표를 독해하지 못하더라도 균형 잡힌 시각의 아마추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전문가들만으로는 사회 발전의 동력을 키우기 어렵다.

도덕성은 더욱 중요하다. 몇 년 전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이 일어났던 이유에 대해 많은 담론이 있었다. 미덕을 세우고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강했던 이유는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그것을 소홀히 여겨 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우리는 말로만 정의를 외쳤지 행동의 단계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원전과 같은 특수 분야 전문가들이 사적 이익 3억원을 위해 국가 손해가 최소한 2조원이 발생되더라도 간단없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오늘 한국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전력 생산량 중 30%를 차지해온 원자력 발전은 경제성, 온실가스 배출 규제, 전력 수입의 어려움, 연료의 매장량, 운영기술 등으로 인해 앞으로 우리나라의 주력 에너지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전은 물리적 에너지뿐 아니라 정신적인 에너지로서도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단계까지 발전시켜야 한다.

헝가리 문예비평가 게오르그 루카치는 20세기의 명저가 된 ‘소설의 이론’ 첫 장에서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라는 기념비적인 문장을 남겼다. 인류의 나아갈 길로서 ‘완결된 문화와 그 양식(樣式)’을 꼽았던 루카치는 세계 1차대전 발발 현장에서 그런 지침으로서의 별이 사라지는 시대의 비극을 보면서 소설의 형식에서 그것을 찾았던 것이다.

이제 자본·자원 경쟁시대에 에너지가 그 기능을 어느 정도 대체해야 한다는 기대는 너무 많이 나간, 실현할 수 없는 꿈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원자력이 그런 문화적 황금시대의 꿈을 전개할 수 있을지는 지금의 원전 인물들의 행동방식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비리의 커넥션을 박차고 일어나 화학적·문화적 비전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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