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이영훈] 소통, 분쟁해결의 출발점 기사의 사진

세상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분쟁과 충돌이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오게 된다. 이는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집단, 사회, 심지어는 국가 간에도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사소한 의견 대립이 극단적인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아파트 주민 사이의 층간 소음이나 도로에서 발생한 접촉사고 등 대화와 조정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쌍방 간의 감정 격화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주 어떤 올케(41)가 시누이(35)와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가 마구 때려 숨지게 한 일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두 사람이 매실주를 담그려고 함께 매실을 사러 가다가 의견 충돌이 생기면서 빚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소한 의견 충돌로 주위를 소란하게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대부분 자신의 의견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끝까지 관철시키려 하고 상대방 입장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데서 생겨나는 문제들이다.

상대의 말을 경청·존중해야

이 같은 소통부재의 현실을 타개하는 첫걸음은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고, 상대방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는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참된 소통은 쌍방통행이어야지, 일방통행이어서는 안 된다. 소통의 길을 내가 먼저 열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분쟁을 해결해나가는 출발점이다. 상담의 기본이 ‘들어주는 것’임을 잊지 말라.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그 누구도 홀로 떨어진 외딴 섬이 아니다”라는 명구처럼 인간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끼어드는 사람, 매사에 편법과 탈법을 일삼는 사람, 납세의 의무를 피하기 위해 이름도 낯선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를 만드는 사람,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사회·경제적 약자를 짓밟는 사람들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군림하는 사회는 ‘국민행복시대’와 거리가 있다.

참된 배려는 타인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한다. 예수께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고 말씀하신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는 말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면 상대방도 우리를 중요한 존재로 생각한다.

진정성 있는 인정과 칭찬 필요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성의 가장 심오한 부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자 하는 갈망”이라고 말했다. 진정성이 담긴 칭찬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채워줄 때,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해나갈 수 있다. 인정과 칭찬의 위력은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인정하고 칭찬할 때, 그 어떤 분쟁의 요소가 생겨난다 할지라도 가족 서로 간의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잘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인정과 칭찬의 영향력은 우리 사회생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남의 잘못을 들춰내고 지적하기보다는 칭찬과 감사를 통해 그를 세워줄 때,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성숙한 사회, 소통이 원활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인류사의 모든 중요한 업적은 올바른 소통이 가능한 집단에 의해 이뤄졌다. 우리 삶의 중요한 경험도 다른 사람과 함께 소통할 때 일어나고 전수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참된 소통이 이루어짐으로써 작게는 개인 간의, 크게는 남북 간의 모든 갈등과 분쟁이 잘 해결되어 우리 민족 앞에 아름답고 위대한 미래가 펼쳐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남북 관계의 문제도 이렇게 풀어가야만 할 것이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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