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김무정] 긍휼의 사명자들 기사의 사진

S목사에게서 급하게 전화가 왔다. 함께 생활하는 외국인근로자가 수술을 받게 됐는데 치료비 마련이 힘들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직장을 잃어 갈 곳 없는 외국인근로자들을 십수 년째 재우고 먹이며 복음을 전하는 S목사는 이 사역을 가족조차 알아주지 않지만 결코 중단할 수 없노라고 했다.

역전에서 노숙인들에게 매일 식사를 제공하는 K목사. 걸핏하면 배식이 늦다고 행패를 부리고 시비를 걸어오는 것에는 이골이 났다. 진짜 무서운 것은 엄청난 양의 쌀과 부식을 마련하느라 애가 타는 것이다. 그는 언제쯤 돈 걱정 없이 이 사역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끼 밥을 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돌려보낼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아프리카 케냐의 J선교사. 악조건을 모두 갖춘 빈민가 키베라에서 무료급식과 어린이 선교를 하고 있다. J선교사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나눌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자신이 희생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주고 싶다고 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

나는 이들을 ‘긍휼의 사명자’라고 부르고 싶다. 긍휼(mercy)은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으로 어렵거나 비참한 상태의 이웃을 가엽게 여기고 도와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기에 구제나 봉사의 개념과는 다르다. 도와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에 누구도 제어가 안 된다. 함께 어루만지고 상처를 치유하려는 사랑의 마음이 바탕에 깔린다.

이렇게 긍휼한 마음으로 사역하는 사명자들에게 세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 자신도 가난했거나 지금도 가난하고, 고난의 파도를 겪었으며,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제 코가 석자이면서 남들을 돕거나 선교한다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때론 비웃음도 당하고 “너나 잘하라”라는 빈정거림을 들어야 한다.

넉넉하고 배부른 이에겐 이런 긍휼의 마음이 찾아오기 힘든 것일까. 내가 아파 봐야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함께 손잡고 눈물 흘릴 수 있는 것은 내 의지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다. 그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힘든 일만 산적해 있지만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분명한 확신 때문이다.

성경의 인물들을 되짚어 보더라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사도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긍휼’을 덧입었다. 내 것, 내 자아, 내 욕심을 모두 풀어 놓고 ‘그리스도의 심장’(빌1:8)을 닮으려고 노력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긍휼은 동정심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증이다.

긍휼로 열매 맺은 바울

바울은 이 ‘긍휼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어루만졌고 사역에 큰 열매를 맺었다. 그의 친밀하고 거룩한 낮아짐이 모두를 기쁘게 만들고 믿음의 공동체로 결속시켰다. 긍휼이 넘치는 복음은 소아시아를 점령했고 세계로 퍼져 나갔다.

오늘 한국교회에 갱신과 각성, 회개가 요구되고 있다. 여기에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선 작은 자요, 고통받는 자요, 부족한 자들일 뿐이다. 하나님이 이런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과 이웃에 긍휼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긍휼은 사명자들만의 몫이 아니다. 한국교회 안에 차고 넘쳐야 한다. 그래야 잔뜩 움츠러든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날 해법이 있다.

김무정 종교부장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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