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잃어버린 戰線 기사의 사진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세대는 자라면서 미국을 참 좋은 나라로 배웠다. 미국에 대해 부럽고 감동적인 얘기를 많이 들었다. 특히 깊게 각인된 것은 도덕적 정직성과 청교도 정신, 민주주의였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일화는 도덕적 정직성에 대해 어린 가슴을 설레게 했다. 아버지가 어린 조지에게 도끼를 선물했는데 그걸로 집 정원의 체리나무를 베었고, 누가 이 나무를 잘랐느냐고 불같이 화내는 아버지에게 정직하게 말한 일화 말이다.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의 나라가 미국이다.

커가면서 미국이란 나라가 도덕과 신앙과 민주주의의 이상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는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서, 어떤 사안은 역사적 사실이나 공부를 통해서, 그리고 어떤 것은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시각의 변화를 통해서였다. 거대 국가 미국이 전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는 거며 엄청난 힘과 돈의 구조 안에 상상 못할 갈등과 음모가 있는 것도 알았다. 정치권력을 축으로 돈과 섹스, 출세가 얽히며 전개되는 흔한 할리우드 영화가 가상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 사회는 진영논리가 지배

기독교 신앙을 갖고 신학을 공부해 목사로 살아가면서 미국의 청교도 정신은 당연히 관심거리였다. 인식의 성장 과정에서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는 통상적인 생각은 나름으로 정리되었지만 근대 역사의 흐름에서 미국이란 나라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그에 대한 신앙적 해석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오늘날의 미국은 스노든 사태가 보여주는 것처럼 도덕적 정직성의 수호자는 아니다. 국제정치와 경제의 레드오션에서 어느 나라든 그런 정직성을 관철시킬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사의 흐름과 기독교 시각에서 미국이란 현상이 던져준 중요한 의미 중 하나가 위에서 말한 도덕적 정직성이다. 도덕적 정직성의 핵심은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기준을 갖는 것이다. 인종, 지역, 계층, 종교 등 소집단 이기주의를 넘어 인륜도덕에 근거한 어떤 기준을 가치관의 핵심으로 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진영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국정원이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 온통 시끄럽다. 정치판이 어떻게 움직일지 이해득실이 어떻게 나타날지 관심사다. 그런 와중에 민생과 국익이 피해를 본다. 정치집단의 손익계산서가 어떨지는 몰라도 정치판의 수순은 누구나 안다. 현재 공개된 내용을 봐도 그렇고 더 어떤 내용이 나와도 진영논리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대립하는 진영에서 최고의 말꾼들이 나서서 논리를 펴며 해석할 거고, 그게 밀리면 그냥 우길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상식과 정직도 쉽게 뭉개지는 곳이 정치판이라면 지나친 비관인가.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NLL 건은 상식적으로 별개 아닌가. 국정원 선거 개입 건은 민주주의와 헌정에 연관된 중대 사안 아닌가 말이다.

도덕적 정직성이 기독교 소명

우리 사회에 보수·진보 사이의 전선(戰線)이 여전히 막강하다. 지역감정의 전선에 빈부와 세대의 전선까지 더해졌고 이들이 서로 얽혀 커다란 진영논리를 형성하고 있다. 요즘은 민감한 문제에는 양 진영의 데모가 동시에 발생한다. 전에는 그래도 큰 틀의 명분이란 게 있었다. 민주주의나 인권이나 사회적 양심도덕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이런 명분과 그 반대쪽 사이에 전선이 존재했다. 지금 우리는 그 전선을 잃어버렸다.

아픈 마음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에 대해서다. 기독교는 진영논리를 넘어서 있는가. 기독교 진리의 심장은 십자가의 메시지인데, 그에 연관된 일반 가치는 인도적 인륜도덕, 법치적 민주주의, 상생의 시장경제다. 도덕적 정직성이 이들의 공통분모다. 기독교 신앙의 사회 역사적 소명은 이 전선을 지켜내고 이어가는 것이다. 잃어버린 이 전선을 다시 찾아야 한다.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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