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김정일의 손바닥 위에서 기사의 사진

“남북정상회담 갈등, 지금은 지식과 논리보다 지혜와 이해가 더 소망스러운 때”

남북 장관급 회담이 무산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시점에 열린 개성공단 실무회담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뭘까? 아마도 ‘실무’ 차원의 회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무책임자급의 회담이라면 대표의 ‘격’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거창한 과제로 기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당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만 찾으면 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합의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처럼 남북대화는 낮은 단계에서부터 실적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이걸 모르지 않을 것이면서도 남북의 당국은 ‘높은 수준’의 회담을 서로 추구했다. 까닭이 없었을 리 없다. 우선은 ‘통일지향’이라는 명분이다. 그다음으로는 역대 집권자들의 ‘개인적 동기’를 꼽을 수 있다. 민족사에 ‘민족통일의 예비자 혹은 성취자’로 새겨지고 싶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념정향에도 정당성을 부여받고 싶어 했을 듯하다. 그래서 ‘한 첩에 낫는 약’을 ‘고위급회담’이나 ‘정상회담’에서 얻으려 한 게 아닌가?

내부용의 과시정책이었을 수도 있다. 남북의 집권자들 공히 내부 지지확보의 지렛대로 회담을 이용하는 경우다.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력도 중요하지만 상대를 적절히 조종할 수 있는 노련한 정치력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능력을 국민들에게 확인시킴으로써 지지와 존경을 얻겠다는 정치적 책략으로서의 회담도 없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거대담론을 위한 남북정상회담의 ‘맨얼굴’을 온 국민이 확인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포기 발언’을 했느냐 안 했느냐로 온 나라 안이 팥죽 끓듯 한다. ‘포기’라는 표현 자체는 없었지만, 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앞에서 표출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과공’(국정원 공개본에 따르면)의 화법이었다. 가문의 어른을 대하는 자리였다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고자 한 배경을 ‘족적(足跡) 콤플렉스’에서 찾는다면 무리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금 4억5000만 달러, 현물 5000만 달러어치로 정상회담장의 문에 들어설 수 있었지만, ‘대북비밀송금 특검’을 수용했던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임기말년의 대통령으로서 현금 및 선물도 없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김 전 대통령에 버금가는, 가능하다면 그것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 고심했을 것은 불문가지다. 젠체하는 북한 김 위원장 앞에서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의 모습을 보인 까닭을 추측하기로는 그렇다.

대통령의 업적 욕심은 당연하고 필수적이기까지 한 리더십 요건이다. 그렇지만 그게 사적인 동기로 추동되고, 그 정도가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남북관계든 다른 정책이든 한 단계 한 단계 착실히 밟아가겠다는 자세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북한 핵무기 개발 등 절박하고 엄중한 과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국제사회와의 공조로 풀어가야 할 일이다. 남북 사이에서는 실천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접근방식이라고 본다.

‘재발방지 약속’ 등 제도나 정책의 문제는 양측 당국 차원에서 풀어야 할 일이지만, 그걸 위해 꼭 장관급회담이나 정상회담을 열 필요는 없다. 좁은 범위, 낮은 수준에서의 보장은 해당 지역 책임자들 사이에서도 가능하다. 문서를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 높은 사람들의 업적관리용 회담이 아니라 남북 사이의 실질적 협력증진과 신뢰축적을 위한 회담이 소망스럽다는 뜻이다.

너무 똑똑해서 요란스럽기 그지없는 정치인들에게 호소하려 한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쫓는’ 상황은 제발 종식시키시라. 사거 1년 반도 더 지난 북한 김 위원장의 손바닥 위에서 멀쩡한 우리 정치인들이 서로 뒤엉켜 집단 패싸움을 벌이며 온갖 비난 증오 저주의 말을 쏟아내는 모습, 정말이지 더는 봐줄 수가 없다. 지식과 논리보다는 지혜와 이해가 소망스러운 때입니다, 정치인 여러분!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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